詩舍廊/2021전 발표 詩

사리원의 朴君에게

취몽인 2018. 7. 26. 14:42




사리원의 朴君에게




한 이십 년이면 통일되지 않겠습니까?


해 지지 않던 모스크바 좁고 검은 강둑에서

싸구려 보드카를 마시며 자네가 말했지

그 날 낮엔 임수경이 평양에 들어왔다는 뉴스가

모스크바 텔레비전에 나온 날이었지


자네를 지금 만났더라면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이 시절에 만났더라면

날선 모스크바 낯선 호텔 방에서

서로의 생각을 더듬던 서러움은 없었겠지

 

거리 모퉁이에서 자네와 나를 바라보던

이데올르기의 날카로운 시선들  

첫 사랑이 상대를 탐닉하듯

러시아제 꼬냑과 한국산 사발면 들이키며

서로의 생각을 추궁할 때도 

우리의 만남은

엄밀한 반역의 형식으로

백야의 밤 창밖을 흐르고 있었지

 

사리원 출신 모스크바대 유학생과

대구 출신 어설픈 경제사절단의 대리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일곱 살 터울 분단된 조국을 공유한 자네와 나는

서로를 두려워 하며 서로를 그리워 했었지 


모스크바대 고딕 첨탑을 스치듯 볼 때마다

자네 목소리 떠오르네 

 

형님 우리네 기숙사로 놀러 가시지요?

 

그 초청을 감당하지 못했던 두려움이 새삼 기억이 나네

마음을 터도 이데올르기의 세뇌는 뿌리 깊었지

돌아보면 서툰 정의 부끄러운 진정이

오랫 동안 내 가슴에 남아 있음을 고백하네

 

자넨 지금 북녘의 별이 되어 있는가

나는 지금 남녘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네

 

이틀의 만남, 삼십 몇 년의 세월

쉽사리 자넬 지울 수 없음은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 때문일까 


자네가 말한 이십 년 후의 통일은 아직 유보중이네

하지만 다시 이십 년을 셀 수 있다면

눈빛 선한 노인의 모습으로

어쩌면 자네 고향 사리원 어느 언덕에서

통일 막걸리 한 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네


이 번엔 내가 말하겠네


한 이십 년이면 통일되지 않겠나?



20180726  / 민족작가연합 '도보다리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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