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의 말투
그렇게 많이 취하진 않았어 창문을 좀 열어줄래 어깨를 짚고 있는 낯 선
친구들과는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할 때야 근데 우리를 실어나르는 바람에도
이목구비가 있다는 걸 아니 하루가 컴컴하게 내려 앉는 이맘 때는 궁금한
코 끝들이 골목들을 휘감으며 잔뜩 킁킁거리지 내 안에서 솟는 불의 기억을
맡는 일이 네겐 유쾌하지 않을 수 있어 저기 하나씩 불이 켜지는 저녁마다
제 각각의 표정으로 스며나오는 우리가 보이니? 어떤 마음들이 타오르길래
저런 표정이 생길까 생각해 본 적이 있지 그런데 얼굴도 없는 표정이 어떻
게 너희를 유혹하는 걸까? 목숨들은 바싹 타올라 사라졌어 남은 것은 통풍
구에 매달린 비명과 껍질에 새겨진 화인같은 것들이지 술은 왜 마시냐고?
어차피 사는 일은 뭔가를 태우는 거야 나를 불사를 수 없으면 뭔가를 대신
불살라야 해 타오르는 목숨을 버티려면 나를 지우는 것이 현명해 빈 소주
병 안을 맴돌다 빠져나가면 한결 가벼워지거든 창문을 닫지 말라고? 어제
는 어느 정도 씻겨 나갔어 남은 건 약간의 흠집 같은 것뿐이야 감당할 수밖
에 없어 후각은 쉬 피로해진다니까 곧 익숙해질 거야 나는 점점 더 취하는
것 같네 저기 또 몇몇이 풀어헤친 머릿단을 풀풀 디밀고 있는데 말이야
20180624 / 190910 웹진시인광장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