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삼 년 동안 두번째로
삼십 삼 년 동안 두번째로 나는
나로부터 도망갈 결심을 한다.
우선 머리통을 떼내어
선반 위에 올려 놓는다.
두 팔과 두 발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몸통을 떼내 의자에 앉힌다.
오직 삐걱거리는 무릎만으로 살며시 빠져 나와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오래 달리고 달려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
가만히 쉬고 싶을 때,
저 앞에서 누군가가 걸어간다.
그에게 달려가 동정을 구한다.
그 품에서 잠시만 쉬게 해달라고,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품에서
가볍게, 풍선에서 공기빠지듯
가볍게 죽게 해달라고.
그는 못 들은 체하며 걷는다.
나는 또다시 그에게 동정을 구걸하고
이윽고 마지못해, 귀찮다는 듯
그가 나를 뒤돌아볼 때
그것은.....
짓 뭉개져 버린 나의 얼굴
-최승자. <즐거운 日記> 1984년. 문학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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