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그때

그때, 81년 팔공산

취몽인 2020. 7. 22. 11:17
그때, 81년 팔공산


스무살
아직은 발목이 제대로 발목일 때였지요

지금은 목사가 된
그래서 나를 잊고 싶어하는 친구와
산을 올랐습니다

목표는 단 하나
이 도시 가장 높은 곳에서 소주를 마시자

네 홉들이 소주 네 병
새우깡 네 봉지

길 모르는 산길 오르다 숨을 놓쳐
예서 쉬었다 가자 몸 내려놓을 때
몸보다 먼저 내리던
소주 봉지
산에 부딪혀 산산히 깨진 순간

하!
푸른 인생은 길을 잃었습니다

맨 마음으로 밤새 별이나 노려보다
고개 드니 갓바위
컴컴하게 웃고 있었지요

말짱한 아침에
소주 먼저 하산한 산길 따라 내려와

그놈은 목사가 되고
나는 월급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200714

'詩舍廊 > 그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때, 89년 아르바트의 밤  (0) 2020.08.01
그때, 64년 새길시장  (0) 2020.08.01
97년식 가난  (0) 2020.07.28
그때, 77년 열다섯 머스마  (0) 2020.04.04
전설  (0) 2019.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