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애완事物

애완事物-주전자

취몽인 2020. 12. 1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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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事物-주전자


맡겨놓은 것도 아닌데
받아오라고 했다
정지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던 채권자를 흔들며
받으러 다녀오는 길은 늘 불안했다
채권자도 더 찌그러질까 무서웠을 것이다
한 번 받아오면 반드시
두 세 번은 더 받아와야 했다
두 번 정도에 채권자가 나가 떨어지기도 했다
시멘트 마당에 패대기 쳐져
새 귀퉁이가 찌그러지고 찌그러진 귀퉁이 얼결에 펴지는 사이
골목은 난리가 나곤 했다
받아오라던 이는 벌써 떠났고
받아오던 나도 제법 늙었는데
어쩌자고 싱크대 안 어두운 저 구석에 찌그러져 웅크리고 있는지
어머니 남긴 살림 버리다 말고 물을 끓인다
보리차 우려 천천히 한 잔 마시고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받아오라 보낼까 한다
차라리 아주 찌그러지는 게
낫지 싶다는 생각에

아, 보리차 말고 막걸리를 마실 걸 그랬나?

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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