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애완事物

애완事物, 식탁

취몽인 2020. 11. 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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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事物, 식탁


한번도 보지 못했던 배를 천정을 향하게 엎어 놓고 드라이버로 하나씩 다리를 떼낸다

십 년 전
코딱지만한 내 집을 팔고
서러운 아내를 달래느라 데려왔던 놈

옆구리와 네 다리를 훑고간 끌의 흔적
고통의 무늬를 아름답다 속이며 부렸던 시간들

낡은 얼굴 위에 언젠가의 끼니가 스며있다
혼자 마셨던 소주
기름 튀던 삼겹살
고스란히 떠받들었던 저 표정

딸들은
놈이 떠먹여주는 밥을 먹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우리는 몇 번인가 또 이사를 하고
늙고

아내는
시간을 씻어버리고 싶었나보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
날렵하게 살고싶어 나는

얼굴 따로 다리 따로 온몸으로 껴안고 아파트 아래로 끌어내렸다 어두운 나무 아래 얼굴도 다리도 눕히고 돌아서는 마음이 컴컴하다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될까
우리의 십 년을 바라보던 저 얼굴은
딸들을 키워냈던 저 다리는

내일 아침에는 번쩍번쩍한 새 식탁이 올 것이다 그 전에 놈의 숨이 끊어지길 바란다 버려짐을 잊을 수 있도록 십년의 생계를 꿀꺽 다 삼키고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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