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환한 걸레 / 김혜순

취몽인 2021. 8. 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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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편

환한 걸레 / 김혜순

물동이 인 여자들의 가랑이 아래 눕고 싶다
저 아래 우물에서 동이 가득 물을 이고
언덕을 오르는 여자들의 가랑이 아래 눕고 싶다

땅속에서 싱싱한 영양을 퍼올려
굵은 가지들 작은 줄기들 속으로 젖물을 퍼붓는
여자들 가득 품고 서 있는 저 나무
아래 누워 그 여자들 가랑이 만지고 싶다
짓이겨진 초록 비린내 후욱 풍긴다

가파른 계단을 다 올라
더이상 올라갈 곳 없는
물동이들이 줄기 끝
위태로운 가지에 쏟아 부어진다
허공중에 분홍색 꽃이 한꺼번에 핀다

분홍색 꽃나무 한그루 허공을 닦는다
겨우내 텅 비었던 그곳이 몇 나절 찬찬히 닦인다
물동이 인 여자들이 치켜든
분홍색 대걸레가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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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여성적이다.

나무 아래서 우주에 젖을 먹이는 어머니들의 노동을 볼 수 있는가?
둥둥 걷어올린 치맛단 아래로 출렁이는 허벅지의 리비도를 느낄 수 있는가?

오늘도 무던히 제자리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그 분주한 침묵의 젖을 마시고 싶다. 눈 감고, 입 다물고.

나무 한 그루는 한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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