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선림원지에 가서 /이상국

취몽인 2021. 8. 1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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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편

禪林院址에 가서 / 이상국

禪林으로 가는 길은 멀다
미천골 물소리 엄하다고
초입부터 허리 구부리고 선 나무들 따라
마음의 오랜 폐허를 지나가면
거기에 정말 선림이 있는지

영덕, 서림만 지나도 벌써 세상은 보이지 않는데
닭죽지 비틀어 쥐고 양양장 버스 기다리는
파마머리 촌부들은 선림 쪽에서 나오네
천년이 가고 다시 남은 세월이
몇번이나 세상을 뒤엎었음에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농가 몇채는
아직도 面山하고 용맹정진하는구나

좋다야, 이 아름다운 물감 같은 가을에
어지러운 나라와 마음 하나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소처럼 선림에 눕다
절 이름에 깔려 죽은 말들의 혼인지 꽃들이 지천인데
經典이 무거웠던가 중동이 부러진 비석 하나가
불편한 몸으로 햇빛을 가려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오는데 마흔아홉 해가 걸렸구나
선승들도 그랬을 것이다
남설악이 다 들어가고도 남는 그리움 때문에
이 큰 잣나무 밑동에 기대어 서캐를 잡듯 마음을 죽이거나
저 물소리 서러워 용두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픔엔들 등급이 없으랴

말이 많았구나 돌아가자
여기서 백날을 뒹군들 니 마음이 절간이라고
선림은 등을 떼밀며 문을 닫는데
깨어진 浮屠에서 떨어지는
뼛가루 같은 햇살이나 몇됫박 얻어 쓰고
나는 저 세간의 武林으로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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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도, 거듭 만나도
가슴이 울리는 詩가 있는데
무엇때문에 근자의 촉바른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안달인가?

누구나 마음 속에는
휑한 절터 하나씩은 있을 터
내게는 감은이요
누구에게는 선림일뿐
가지 않아도 늘 서늘한 바람으로 정수리를 씻어주는 곳

하나 그곳은
반드시 돌아서야 하는 곳
꽉찬 욕심만 부숴진 기왓장 사이에 부려놓고
빈 마음으로 돌아서는 곳

詩는
나를 그 터로 데려가고
詩人은
나를 그 터에서 데려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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