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2습작

손상

취몽인 2022. 2. 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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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


익숙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본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지금껏 열 편 정도는 봤다. 한때 입술 두툼한 여배우와 살았던 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약간 나이 든 군인의 분장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뭔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불과 사흘 전에는 우주선을 타고 해왕성까지 가서 토미리존스를 만나고 왔었다. 한 달 전에는 티벳에서 7년을 보내기도 했고 몇 년 전에는 형과 함께 송어낚시를 한 적도 있다. 이 정도 말하면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차릴텐데 나는 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쓸때마다 톰행크스, 그리고 조금전까지 알았던 이름, 탑건의 배우 이름만 생각이 난다. 아, 그 여배우 이름은 안젤리나 졸리다. 이런 식이다.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쓰면 잊었던 다른 사람의 이름만 생각나는.. 젠장 탑건, 미션임파셔블의 잘 생긴 그 친구의 이름이 뭐였더라? 아, 톰 크루즈!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도 화면 속 저 친구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엔군을 지휘중이다. 오래 끌다 다 끝나고 다시 시작된 전쟁, 아프가니스탄. 그곳도 기억이었다 망각이었다 기억이 되는 곳. 이 친구의 이름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청춘의 모습으로 익숙한 그가 늙은 장군으로 말하는 모습은 어색하다. 연기란 그런 것이겠지만 그도 자기 이름을 잊지않았을까 궁금하다. 영화속 그는 글렌 멕마흔이다. 4성 장군. 대체로 그의 역할은 오래 전 죽은 제임스 딘의 아류이다.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검색을 하면 10초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는 싫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다. 이런 일이 잦다. 늙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물러서면 더 빨라진다 했다. 버텨야하는 것이다. 드러누운 뉴런들을 채근해 일으켜야 한다. 미국배우 한 명의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다. 언젠가 잊을 지도 모르는 아내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떠올려야 한다.이글을 쓰느라 영화는 저 혼자 흐른다. 이름 모른 그도 혼자 떠든다. 타이타닉에 나왔던 그 배우는? 아니지만 모른다. 곧 알게될 것이다. 내가 한 사람의 이름을 알기 위해 집중하고 있으니까. 보통 사이의 인물은 떠오른다 말했다. 아, 그렇지 디카프리오. 연이어 그는 브래드피트, 그렇지 브래드피트다. 그는 브래드피트다. 브래드피트가 팔짱을 끼고 늙은 장군의 연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삼십분이 지났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그저 그가 브래드피트를 찾았을 뿐. 아차 탑건의 누구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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