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세탁소
아줌마 저예요. 하늬 엄마
전화기를 든 아내의 호들갑이 대단하다
그쪽도 만만찮다.
진정한 반가움은 고함을 동반한다.
1985년 1월 2일
덜컥 취직이 되고 출근을 위해 올라온 서울
연애중이던 아내는 대책 없이 따라왔다.
하루 여관서 자고
세탁소 문간방 한칸을 월세로 얻었다.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
집 주인 이름이 임재덕이었다.
이 년 살았다.
저질러 놓은 동거를 되돌리지 못해
신입사원은 저녁마다 술집으로만 돌았다.
몇 푼 월급 대구 집으로 떼보내고
술값 하고나면 동거인에게 줄 돈이 없었다.
그 난감한 가난과 외로움의 시간에
아내는 세탁소집 주인네에 기대 버텼다.
밥도 얻어먹고 배신 중인 사랑에 대한 위로도 받고
삼십칠년이 흘렀다.
문득 그 세탁소 아직 있을까 물음에
인터넷을 뒤졌다. 한영세탁소.
아직 있었다.
꼬마였던 큰 애 철수는 쉰이 다됐고
막내 종수도 마흔 줄이라는 아줌마는 슬펐다.
연신 고마웠다는 아내에게
얼굴이나 함 보잔다.
남편이 보청기센터 한다니
나도 보청기 필요하다 하신다.
막 승천하려 바닥을 박차던 시절
발목에 차고가 채워져 곤두박질 쳤던 그때
아내도 나도 사랑에 절망했을 때
한영세탁소
임재덕 사장과 그의 아내
엄혹한 시베리아 벌판 같은 서울에서
딱 한평반 위로로 지켜줬던 그들
아내는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나는 무슨 인사를 해야할까?
그 1985년의 찬바람 숭숭 들던 비트에게.
220415
1985년 세탁소
아줌마 저예요. 하늬 엄마
전화기를 든 아내의 호들갑이 대단하다
그쪽도 만만찮다.
진정한 반가움은 고함을 동반한다.
1985년 1월 2일
덜컥 취직이 되고 출근을 위해 올라온 서울
연애중이던 아내는 대책 없이 따라왔다.
하루 여관서 자고
세탁소 문간방 한칸을 월세로 얻었다.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
집 주인 이름이 임재덕이었다.
이 년 살았다.
저질러 놓은 동거를 되돌리지 못해
신입사원은 저녁마다 술집으로만 돌았다.
몇 푼 월급 대구 집으로 떼보내고
술값 하고나면 동거인에게 줄 돈이 없었다.
그 난감한 가난과 외로움의 시간에
아내는 세탁소집 주인네에 기대 버텼다.
밥도 얻어먹고 배신 중인 사랑에 대한 위로도 받고
삼십칠년이 흘렀다.
문득 그 세탁소 아직 있을까 물음에
인터넷을 뒤졌다. 한영세탁소.
아직 있었다.
꼬마였던 큰 애 철수는 쉰이 다됐고
막내 종수도 마흔 줄이라는 아줌마는 슬펐다.
연신 고마웠다는 아내에게
얼굴이나 함 보잔다.
남편이 보청기센터 한다니
나도 보청기 필요하다 하신다.
막 승천하려 바닥을 박차던 시절
발목에 차고가 채워져 곤두박질 쳤던 그때
아내도 나도 사랑에 절망했을 때
한영세탁소
임재덕 사장과 그의 아내
엄혹한 시베리아 벌판 같은 서울에서
딱 한평반 위로로 지켜줬던 그들
아내는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나는 무슨 인사를 해야할까?
그 1985년의 찬바람 숭숭 들던 비트에게.
220415
'詩舍廊 > 그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78년 깡다구 (0) | 2022.03.30 |
---|---|
그때, 91년 겨울, 대흥동 (0) | 2022.02.14 |
그때, 76년, 77년 (0) | 2022.02.14 |
빠구리 (0) | 2021.02.06 |
그때, 13년 태평로 (0) | 2020.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