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는 사람 / 김애리샤
그는 평생
김매는 사람이었다
배추밭에 감자밭에 어린 수수밭에
자라나는 잡초들을 뽑아내느라
고개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모낸 논에, 살아 보겠다고
자라나는 피들을 뽑아내느라
그의 발은 언제나 부르터 있었다
그의 가슴과 등은 그대로
밭이고 논이었다
잡초들을 뽑아내며 피를 뽑아내며
그는 마음 속 그리움들도 뽑아내려
에썼다, 그러나
김을 매거 또 매도
사라지지 않는 풀이 있었다
아무리 밟아도
아무리 뽑아도
죽지 않는 고향
아버지는 평생
북쪽에 두고 온
마음밭 김을 매셨다
-김애리샤<치마의 원주율> 걷는 사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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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앉은 이 곳은
내 아버지가 남긴 묵정밭
소출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마른 풀만 뽑고 있노라면
깡마른 아버지 입성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평생 맨
아버지의 마음밭은 어디였을까?
너덜해진 폐에서 목숨이 뽑혀 나가도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남은 밭에서
나는 또 무슨 마음밭을 매고 있나?
아버지라는 매비우스의 고리
뽑아도 뽑아도 돋는 풀을 매며
슬하를 지키는 끝없는 길
모진 아버지
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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