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2 발표 詩 9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눈을 뜨며 사각형 침대에서 나를 꺼낸다 사각형 갑에서 담배를 꺼내 피고 사각형 테블릿에서 음악을 흘린다 사각형 노트북에선 사각형 성경이 나오고 사각형 책상에 앉아 사각형 시집을 펼친다 사각형을 마저 채우지 못해 詩인 詩들 사각형 문을 지나 사각형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다시 사각형 책상 앞에 사각형 벽에 붙은 사각형 계획들 사각형 시간에 따라 사각형으로 실천한다 사각형의 하루가 직각으로 꺾이며 조금씩 완성된다 사각형 현관을 나서 사각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각형 아파트를 나설 것이다 사각형 식탁에 앉아 사각형으로 한 잔 하기 위해 사각형으로 친구들은 모일 것이고 사각형 태양이 서쪽 아래로 저물 때 사각형을 구기며 우리는 일찍 취할 터 사각형이 쓰러지지 않도록 사각의 어깨를 서둘러 밀어 넣..

비빔국수

비빔국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자꾸 움직여보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줄 알면서 그래도 움직여 보란 말에 꼼짝 못하는 울화를 쏟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게 내 탓이냐 움직이도록 하는 게 바램 아니냐. 화가 돌아오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라 건 폭력이다. 되 쏟습니다 모처럼 집에 왔던 딸들 난감하게 제 집으로 돌아가고 조는 강아지 사이에 두고 입 다물고 있습니다. 속 모르는 사람, 각자 속으로 그랬습니다. 뚝딱뚝딱 참기름 냄새 나더니 비빔국수 두 그릇 상에 놓입니다. 아내는 검은 고명처럼 암 말없고 저는 옆으로 설설 기어 딸이 숨겨 놓은 소주를 더듬습니다. 국수 가닥 깊이 잘 버무려진 묵은 김치를 찾아 한 잔에 한 점 목 따갑게 삼킵니다. 긴 오해의 가닥들 탱탱하게 꼬인 것들에 취하는 시간입니다. 요모..

월간조선 기사

[詩集 신간] 김재덕 시인의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 갈치를 바르며 자분자분 당신은 목에 걸린 기억을 뽑는다 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부여 성흥산성의 아침. 400살 느티나무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경기도 안양에서 사는 김재덕 시인(1962~)이 귀한 첫 시집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곰곰나루 刊)을 보내왔다. ‘시인의 말’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환갑이 되어 첫 시집을 낸 시인의 ‘약속’을 되새기며 서시 ‘곡즉전(曲則全)’을 읽었다. 곡즉전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문장이다. ‘굽으면 온전해지고 휘면 펴지게 된다’(曲則全, 枉則直) 등 굽은 소나무가 고향 선산을 지킨다는 말과 비슷하다. 지혜로움을 느끼게 한다. 단숨에 읽어 보았다. 곤두박이 바람들 잎 떨구고 갔나 보다 뼝대에 별빛 스..

플라스틱 美人

플라스틱 美人 당당하게 초라한 나 불안하게 당당한 너 오차 없는 승강기는 수정되지 않은 오답 수정된 정답을 섞어 차곡차곡 쏟는다 절개된 어제들이 보기 좋게 지워졌지만 활짝 웃는 너의 표정은 여전히 미심쩍다 가려진 침대 위에서 부끄럽게 나온 탓인가 너의 새로운 태초를 도무지 알 순 없다 조금씩 다듬어져 왔는 지도 모를 일 어색한 미소를 꿰고 이제 너는 누구인가 조각난 거울들이 똑같이 빛나는 동안 원본은 진화했고 그만큼 나는 퇴화했다 압구정 뒷골목에는 버려진 얼굴 가득하고 - 2022 한국시조문학 여름호 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