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영화읽기 126

아버지와 이토씨 / 타나다 유키

. 딸이 혼자 남은 성격 괴팍한 아버지를 모시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그린 영화인데.. 이제는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한 가족 관계 해체 또는 갈등의 이야기라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묘한 개성들이 이미지로 남는다. 가족간의 사랑과 의무, 책임 등등..뒤에 얼굴을 감싼 고통이 있다는 사실. 사랑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어 때로는 이기심과 위선과 허세와 거짓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 그 엄연한 현실. 나이가 먹은 탓에 애 쓰는 딸의 눈물보다 결연히 떠나고자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눈길이 더 따라가는..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는다.'는 이토의 말을 듣고 '나도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 는 마음을 얻은 아야가 떠나가는 아버지를 향해 웃으며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 그런 희망. #아버지와이토씨 #타나다유키

도쿄 오아시스

. . 내일 김장을 위해 속으로 넣을 야채를 다듬고 무우를 씻고 김치통과 다라이, 소쿠리를 씻고 찹쌀풀도 쑤고.. 늦은 점심으로 식빵조각에 커피 한 잔씩하며 수상한 영화를 본다. 굳이 찾아보는 고바야시 사토미가 나오는 영화. 캄캄한 밤에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아침이 밝아오는 해변에 닿을 때까지 혼자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보다 잠든다. 깨우는 누군가는 어느 시절 알았던 이. 각자 혼자였는데 떠나고 보니 곁에 있었던, 아는 사람이 된 사람. 동물원에서 길을 잃은 적 있던 곳에서 만난 길 잃은 사람. 아무 위로도 되지 못하지만 곁에는 늘 누군가가 있고 그 의미 흐린 곁으로 인해 삶이 지탱되는 인생이라는 타인과의 걸음. 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법정스님의 의자

. 멸치를 다듬는 시간 김장 준비를 위해 오늘은 성경 읽기 쓰기 대신 멸치를 다듬는다. 꾸득꾸득 말린 멸치 등을 눌러 갈라 내장을 꺼낸다 바다를 떠난지 오래 삶기고 말려진 목숨들 속을 비운다 아직도 부족해 다싯물로 마저 뽑히기 위해 문드러진 육신으로 떠나기 위해 멸치는 제 속을 비운다 새까맣게 텔레비전에서 법정스님 의자를 본다. 요즘 시끄러운 잘난 스님들 그도 못지않게 잘났으니 뭐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든가 말던가 댓돌 위엔 떠난 스님 고무신만 남았고 내앞엔 한 무더기 멸치 똥만 남았다. 201120

어느 가족 / 고레에다 히로카즈

.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영화 시리즈의 완결판 같은 영화. 부숴진 사람들이 만나 한 데 뭉쳐 사는 가족. 그러나 가족이 아닌. 그러면서 가족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가족이 될 수 없어 더 가족 같은 사람들. 흩어지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가족 아닌 가족들. 2018년 일본. 그림자 속에 찢어진 사람들. 그러나 가족들.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가. 무엇을 이야기 하지 않는가'에 도전하는 것이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 정말 그런 영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지만 그저 가슴이 아픈 영화. 일본 국민 할머니 배우 키키 키린이 영화 속에서 죽고 얼마 후 정말 죽은 영화.

미드웨이

. . 미드웨이를 보고 욕망과 (허위) 영화를 보며 생각한 두 단어다. 태평양전쟁 미드웨이야 오래 전 버전으로 본 적이 있고 새롭게 스펙타클을 더해 볼만하다고 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아메리칸 드림, 팍스 아메리카나를 고양하는 웅변 밖에 메시지는 없다. 그래도 재미 있는 건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 쟝르의 미덕이다. 전쟁 영화는 참 오랜만에 봤다. 사실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아무 생각없이 두 시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나 무협, 갱스터, 에로 영화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데 왜 자주 안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좀 민망하다. 깊이가 없어서, 너무 상업적이어서, 인생에 별 도움이 안돼서 같은 이유를 떠올려 본다. 돌려말할 것 없이 폼나지 않아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 이란 어딘가 황토빛 고원 위의 마을. 100세 노파의 죽음을 만나러 온 한 사내 베흐자드. 그곁을 맴도는 파자드라는 아이. 한적하지만 부산한 마을 풍경 속에서 사내는 며칠을 지낸다. 소소한 일상만을 화면에 쏟으며. 핸드폰이 울리면 차를 몰고 언덕으로 달려가고 할머니는 그만저만 버틴다. 파자드는 계속 시험기간이고.. 누군가는 매일 땅을 파며 사랑을 이야기 하고 어떤 여자는 열번째 아이를 낳고 아이들은 베흐자드가 차를 몰고 빠져나온 흙벽돌로 쌓은 마을 입구를 양을 몰고 나선다. 반복, 반복되는 낯 선 곳에서의 일상들. 길에는 흙먼지만 일고.. '자연을 바라보는게 주사위 놀이 하거나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 낫지.' '꿈같은 약속보다 지금이 좋다네.' 한 사람의 죽음을 독촉 받으며 기다리다 또 다른 죽..

영원과 하루 /데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

. 안개속의 풍경의 감독, 데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 감독의 1998년 작품. 황금종려상 수상작. 데살로니카에서 노년을 보내던 그리스의 시인 알렉산더가 병원으로 떠나기 전 하루를 19세기 시인 솔로무스의 흩어진 시어들을 찾는 여행으로 보내는 모습을 담은 영화. -내일은 얼마나 먼가요? -영원 또는 하루 누군가에게는 영원보다 소중한 하루가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하루가 없는 영원이 있다. 안나, 또는 내 아내에게는 하루가, 나와 알렉산더에게는 영원이.. 그러나 알렉산더는 영원한 하루를 찾았고 나는 아직 하루도 영원도 모른다 詩는 내일 어딘가를 떠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