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뿌리들 오래된 뿌리들 2011. 5. 6 상계 주공아파트 14단지 앞 주차장 키 큰 벚나무 한 그루 무성하다 삼십년 아파트가 삭아 내리는 동안 차곡차곡 푸르른 나이를 쌓아온 나무 지난 겨울 짐도 나르지 못하는 엘레베이터로 오른 굽은 등의 어머니 집 510호엔 수도 계량기가 얼어붙고 보일러 배관도 손 .. 詩舍廊/GEO 2011.05.06
연두 연두 2011. 4. 27 서늘한 비 내리고 나니 성급한 봄 바람기 많은 화장이 다 지워졌다. 새로 뜬 부신 햇발에 눈 씻고 보니 온 세상에 푸른 생명이 이슬꽃처럼 맺혔다. 아, 한바탕 분탕질 뒤 봄은 이제야 연두빛 꿈과 함께 일어서나 보다 詩舍廊/GEO 2011.04.27
나폴레옹 나폴레옹 2011. 4. 19 딸에게 조막만한 봄을 선물했더니 그 봄에게 나폴레옹이란 이름을 붙였다 아침이면 조각 빛 닿는 베란다로 출근시켰다가 해가 지면 제 책상 위로 퇴근시키는 나폴레옹 다가 올 뜨거운 여름과 격랑의 폭풍우를 생각하며 푸석한 형광등 아래 하루를 태우는 시간이지만 .. 詩舍廊/GEO 2011.04.19
해당화 해당화 2010. 11. 18 낯선 얼굴을 한가한 담너머로 바라본다 오십을 살면서 처음 만난 꽃 한 송이 시들어 슬픈 노란 장미 어깨 너머로 시골 다방 들뜬 화장기의 무료한 레지처럼 푸석한 낯빛으로 가을을 바라 본다 - 이름이 뭐지 - 해당화 - 아, 네가 해당화구나 너무나 익숙한 이름 그러나 너.. 詩舍廊/GEO 2010.11.18
땅끝 나무 땅끝 나무 2010. 8. 24 해남 울둘목 땅끝이 물살에 쓸려 나가는 언덕 위에서 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밤새 으르렁대다 푸르게 손 씻고 떠난 태풍 가지마다 사래 치는 그림자로 남았다 옆에 선 멀쑥한 녀석은 분명 해송인데 광목댕기 꽃 치레 키큰 나무는 이름이 없다 호령과 비명을 걸고 철커.. 詩舍廊/GEO 2010.08.23
담쟁이 꽃 담쟁이 꽃 2010. 6. 28 무성하게 내미는 손바닥들 늙은 벽은 푸른 함성으로 가득한데 담장 밑엔 하얀 눈물이 쌓였다. 박수와 환호 여름은 눈부시게 부숴지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 찡그린 표정 하나 눈치 빠른 벌 한 마리 바람으로 여몄어도 맺힌 눈물같은 꽃 숨은 가슴을 헤치고 간다. 詩舍廊/GEO 2010.06.28
아기 무당벌레 아기 무당벌레 2010. 5. 11 출근 길 자동차 앞 유리창 눈꼽만한 벌레 한 마리 이제 오월이니 눈 뜬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파릇한 생명 파란 기척 몇 번이나 날개짓을 했을까 잠깐 내려 쉰 곳에서 느닷 없는 여행을 떠난다 여린 여섯발 미끄러지지 않으려 동그랗게 웅크린 동그란 표정 푸석한 .. 詩舍廊/GEO 2010.05.11
개나리 개나리 2010. 3. 16 삼월 치맛자락은 아직도 매콤 쌀쌀한데 겨우내 푸르렀던 동백이 새초롬 합니다 마른 담벼락 사이로 꽃샘 햇살이 비집어 들어 노랗게 몇 송이 봄이 눈 뜬 탓인가 봅니다 詩舍廊/GEO 2010.03.16
無花果 無花果 2010. 3. 2 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 꽃이 피고 떠나 가면 그림자 뒤로 꽃이 진다 아픈 배 살점처럼 띁어 낸 자식 세월 흘러 시든 꽃 발 아래 떨어져도 속으로 피흘리는 어미 꽃은 지지 않으리 꽃 피면 햇발로 하늘을 날고 꽃 지면 먹장으로 가슴을 메운다 詩舍廊/GEO 2010.02.14
낙엽의 이유 낙엽의 이유 2009. 11. 3 가을이 낙엽을 쏟는 것은 너의 손을 내밀어 달라는 것이다 낙엽이 쉬 떠나지 않고 사위를 배회하는 것은 풀죽은 너를 향한 재촉이다 바람불어 제 몸 휘몰아 날리는 것은 부러 고개 숙이는 너를 끄집는 것이다 기어이 둔덕 귀퉁이 우루루 스러지는 것은 대답없는 너.. 詩舍廊/GEO 200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