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몸담았다 망해버린 회사가 다섯개나 된다.
그 속에는 10대 대기업도 있고 잘나가던 독립 대행사도 있고
사기꾼 사장이 만들었던 회사도 있고 반은 주인 노릇했던 회사도 있다.
다행이라면 내가 근무하는 동안에 망한 회사는 아직도 없고 다 내가 떠난 후에 망했다는 것^^
(회사의 기둥이던 내가 빠지니깐 회사가 망한 거라고.. ㅋㅋㅋ)
그러면서 지내 온 세월이 벌써 22년하고도 8개월..
어느듯 내 인생의 절반이 그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간 속에서 딸둘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흰머리가 더 늘고....
그런데 이번엔 좀 경우가 다르다.
가라 앉는 배위에 서있는 것처럼 번연한 끝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 있다.
남은 시간은 한달 남짓.
획기적인 전기 또는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한 줄기 생명 연장의 묘약이 없다면
이 회사는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神의 손길이건, 억세게 운좋은 줄타기의 결과이건 간에
회사가 망해도 나는 또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망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法人을 바라보고 있자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우선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사장이 보인다. 스스로 말하길 엄청난 열정으로 승승장구하며 살아 온
30년 사회 생활이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사람이 너무나 부숴지고 있다.
몇가지 치명적 고민에 빠진 그는 아예 판단력을 잃어 버렸다.
위기일 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격언은 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듯하다.
승승장구 인생은 한 번 넘어졌을 때 일어날 힘을 예비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눈 앞의 작은 이익에 빠져버리는가 하면 순간 순간 드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뱉어 버린다.
상처 입은 사람은 떠나고 불안한 사람도 떠난다.
떠나는 사람들이 무서워 떠나 보내야 할 사람을 붙들 수 밖에 없다.
희생하는 사람에겐 더 큰 희생을 당당히 요구하고 희생하지 않을려는 사람에겐 비굴하다.
슬픈 일이다.
나 또한 비겁하다. 가라 앉는 배에서 어느새 한발을 내밀어 내 살 나무조각을 준비한다.
線을 긋고 그 線까지만 회사를, 동료를 위한다. 그 線을 넘어 오면 저항한다.
상황이 만든 상대의 약점을 뒷춤에 쥐고 적당한 베팅으로 이익을 찾는다.
이건 승승장구 하던 사람의 대책없는 몰락과 대비되는 비틀대며 살아온 자의 닳은 처세이리라.
아무 하는 일 없이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쓴다.
겉으로 부산한 풍경, 그러나 그 뒷편에 쌓인 한숨들...
나의 비겁한 무기력은 이 순간에도 내일을 숨가쁘게 계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