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2 (금)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려고 선잠을 털고 나선 새벽 거리에 푸른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운 없는 가로등 불빛을 가로 지르며 반짝 반짝 부숴져 내리는 빗줄기들..
섯부른 가을 냄새가 코끝에 느껴졌다.
편리하게 숫자로 토막 낸 양력보다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경험이 쌓여 나뉘어진 음력 절기가
더욱 정확하단 생각이 든다. 이십여일 지나면 추석이니 어찌 가을이 성급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여름이 지나가며 내 인고의 시간들도 그렇게 휩쓸려 지나가는 것 같다.
역시 고난이란 맞닥뜨려 헤쳐나갈 때보다는 맞닥뜨림을 기다리는 전주가 가장 고통스러운 것 같다.
도무지 지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도무지 식지 않을 것 같은 열대야가 새벽 비에 씻기듯 흘러버리고
어느새 터널 끝에 서서 희망을 바라보게 되는 것.
뭐 대단한 반전이나 급전상승의 희망은 아니지만 다시 활력을 얻게 된다는 것 만으로도 희망은 반갑다.
이즈음이면 우리 집은 남자의 계절이 시작된다.
내일 돌아 가신 아버지 추도식을 시작으로 돌아가신 시기 비슷하게 태어나신 날이 날이 기다리고
9월 1일이면 나와 더불어 이 집안 둘뿐인 남자 중 하나인 동생의 생일, 그리고 추석 다음날인 15일이
내 생일이니... 가히 우리집 남자들은 늦여름 초가을 남자들이라 할 만하다.
선택할 수 있으면 나중에 9월중에 죽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우스개처럼 든다.
여러 개 프리젠테이션도 오늘로 거의 끝나고.. 아내 가게 방학 성수기도 끝나 한숨 쉴 수 있는 시기.
터널 끝에 자질구레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도 반갑게 맞이 할 일이다.
추석이 너무 급하게 다가와 산소 벌초를 추석 이후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형편이 이러니 여름 내 별르던 낚시는 어떻게 갈 수 있을려나... 아버자에게도 붕어들에게도 미안하다.
밖의 푸른 비가 밝아 오는 날에 눈부신지 창문 유리 맨질한 벽에 몸 부딪혀 시끄러운 아침이 문득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