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잔 봐 월매나 싱싱혀
- 조 찬 용 -
쏙 구녁은 맨들맨들허고 낙지 구녁은 까끌까끌하잖애
가슴에 치오르는 쓸쓸한 만큼의 긴 작업 옷을 입고
까끌까끌한 갯벌의 심장을 파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낙지의 숨소리
낙지의 숨소리와 그녀의 숨소리가 간격을 좁히는 사이
목으로 오르는 등 굽은 숨소리에 겨울 갯벌의 껍질이 벗겨지고
한 양동이만큼의 서릿발 갯벌을 올리고서야 물 끝에서 손에 들려오는 낙지
막걸리 몇 순배 차고 오른 술꾼의 흔들림이 이랬을까
이것 잔 봐 월매나 싱싱혀
낙지의 흡반처럼 갯벌과 한 몸이 되어야 가 닿을 수 있는
그녀의 풍성한 웃음이 손끝에서 꿈틀거린다
가쁜 숨 몰아쉬고 힘이 무너지는 그 소실점에서 만나게 되는
미끌미끌한 숨소리의 환한 빛
그려도 이눔이 질이여
이눔이 내 살림을 다 해주잖애
새끼덜 시집 장개 다 보내주고 날 믹애 살려줘
칠십 평생을 갯벌에 흡반처럼 달라붙어 산 그녀의 얼굴이 파도를 닮고
갯벌을 닮아도 지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것 잔 봐 월매나 싱싱혀
내가 심들어도 이 맛에 사는 거 알겄는가
출처 : 시세상
글쓴이 : 조찬용 원글보기
메모 : 진득함이 있는 詩.
아! 나의 詩는 늘 너무 가볍다.
그것이 나의 가벼움 탓이니 어쩔수도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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