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야경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세요?
구역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동네 뒷산에 오르면 제일 많이 보이는 게 빨간 불빛을 내뿜는 십자가입니다. '서울 전체가 공동묘지 같다'는 우스갯말이 나올 정도로 할 정도로 많습니다. 200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개신교회가 5만 여개, 개신교인이 8백 6십만명을 넘었더군요.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는 교회와 교인이 넘쳐나는데도 한국 사회는 예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한국 교회에 교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해야 한국 교회가 변화할 수 있을까요?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최근 펴낸 <예수 없는 예수 교회>에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한국의 예수 교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김영사 제공
한 전 총재가 주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안 계시다"는 거죠.
한국 교회는 인간 예수의 삶 대신 신격화된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2천년전 유대 땅에서 태어난 예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예수는 당시 사회 기득권층에 맞선 청년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의 탐욕과 위선을 비판했죠.
비판만으로 그친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사랑을 실천한 거죠. 낮은 자들과 함께 먹고 아픈 자들을 치료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를 깨고 '원수를 사랑하라'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는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기득권층의 탐욕과 위선을 질타합니다.
민중의 지지를 받는 개혁가의 등장.
당시 기득권층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합니다. 결국 대제사장 무리들에게 붙들려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진 예수는 십자가형을 당하게 되죠.
하지만 십자가에 달려 힘없이 패배한 것처럼 보였던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해 비폭력 저항 운동의
승리를 보여줬습니다. 이런 예수의 사랑과 고난 그리고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고 그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한 전 총재는 이와 같이 예수의 조건 없는 사랑이 한국 교회에 없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 60여 년간
한국 개신교는 불행하게도,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속옷에다 냉전 근본주의 신념이라는 겉옷을 덧
입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죠.
"그들에게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이 가장 불편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주적은 초전박살내야 하는 원수인데 그들을 사랑하라니 언어도단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의 산상설교는 실천할 수 없는 허튼소리처럼 들릴 것입니다."
또한 한 전 총재는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예수의 명령과는 다르게 한국 교회는 십자가를 앞세워 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각종 교회 병폐는 예수가 교회에 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죠.
"십자가를 앞세워 불투명한 교회 운영을 은폐하고 십자가를 앞세워 자식에게 종교권력을 세습하는
것은 오히려 예수를 교회 밖으로 내쫓는 짓에 불과합니다."
"'예수 믿기'에 맹렬하고 예수 이름으로 선교시장을 확장하는 종교적 마케팅 활동에는 맹렬하면서도 '예수살기', 특히 역사적 예수의 삶과 말씀 실천하기는 게을리 하거나 무시하는 풍토를 저는 슬퍼합니다." 한 전 총재는 개신교인들이 매주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
실물 예수' 없이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예수가 바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게 된다는 거죠. '사도신경'에는 하나님의 아들, 신격화된 예수만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했던 인간 예수의 삶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는 축소되고 그리스도(구세주)는 확장되는 것은 곧 역사는 외면당하나 신화는 존중된다는 뜻입니다." 실물 예수를 빼버리고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사랑의 예수를 잃지 않았다면, 한국 교회가 '개독교'라고 욕 먹는 일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는 예수의 삶과 다른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한국 교회와 교인들은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교회 다니는 정부 각료들과 정치인들도 읽어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복용 신격화된 예수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해 살았던 사랑의 예수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정부 각료들과 정치인들도 읽어보기를
이렇게 '내 삶에 들어오신 예수님'부터 '십자가, 그 멋진 패배의 미학'까지 21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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