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게 마련이다.
책을 읽어도 활자들이 붕붕 날아다녀 도무지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고집스레 펼친 페이지 속으로
근시의 머리를 디밀자 이젠 아예 머리가 웅웅거려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자꾸 목이 말라 몇 잔이나 물을 마셨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지금 내 목구멍은 까실한 사포를 펼쳐 놓은 것 같다. 컴퓨터 모니터를 이리저리 뒤적여도 별 읽을 거리도 없는데
괜히 갔던 페이지를 다시 들추고 하릴없이 우리 동네 빌라 매매 시세까지 찾아 본다. 좀 내렸다.
인터넷 뱅킹을 열어 쏟아져 나간 자동이체를 확인하고 그 중에 오늘 들어오기로 한 구제금융 입금이 지연됨을 초조해 한다.
다음 달부터는 싼이자에다 주인없는 나랏 돈이라고 덥석 빌렸던 놈이 원금 균등분할 상환이란 딱지를 달고 돌아온단다.
왜 오늘 그걸 굳이 확인해야 했을까? 다가 올 짐들을 왜 나는 미리미리 다이어리에 쌓아두고 있는지... 그때가 되어 하루나
이틀 전에 알아도 전혀 늦지 않고 어치피 허적허적 해결될 일이건만 왜 스스로 목을 미리 죄는 것일까?
하루에 한 번은 외출을 하리라. 그것이 생산을 위해서건 소비를 위해서건 꿈틀거려야 산다는 자기 암시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렇게 하기로 했건만 결국 오늘도 문 앞만 열댓번 들락거리고 저녁을 맞는다. 게으름인가 소심함인가 도피인가?
멈춰버린 다람쥐 쳇바퀴. 그 안에 오두마니 앉은 다람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한 달 31일은 너무 길다. 30일도 긴데 거기다 하루를 더하다니... 5월은 쳇, 너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