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마종기 <하늘의 맨살>

취몽인 2010. 7. 16. 14:48

 

 

 

 

 

 

 

연신내 유혹 / 마종기

 

 

1. 시인의 술집

 

지난 봄 우리가 간 술집이 연신내였지요?

비 오는 늦은 밤까지 친구 되어 술 시중까지 들고

언제 지나간 매력인데 남은 찌꺼기 같은 가루가

아무리 털어내도 몸에서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지요.

술을 마셔도 답답한 내가 주정까지 한 것 같은데

그 빗소리 눅눅하고 인심 좋던 술집이 연신내였지요?

거기는 내가 처음 가본 동네란 말을 했던가, 몰라.

수십 년 허공을 헤매며 살아온 게 유난히 무거웠던지.

 

젊어서는 실수 연발에 걷잡지 못할 골목길 천지였고

연신내라는 이름은 큼직한 그 냇가 때문에 얻은 것인지,

다리 건너 시장 근처에서는 왁자한 소리도 들은 것 같은데

운 좋게 돌아온다면 여기 살아도 되겟냐고 물었지요, 아마

젊은 당신은 너무 늦었다고 경고의 표정을 지었던 것인지.

그래도 취하니까 고개 끄덕이던 술집의 눈을 언뜻 보았지요.

2번 출구로 나와 길 건너면 된다고 몇 번이나 중얼 거렸던지.

석 달 동안의 귀국으로는 모국어 쓰는 것만도 송구스런 일,

연신내 다시 가기 전에 간단히 편지를 끝내기로 결심했지요.

 

 

2. 연신내 근처

 

연신내가 불광동 옆에 산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 동네는 내게 개구리잡이로 입력되어 있는 곳.

예과 때 비교해부학 숙제로 열 마리 삶아서 뼈를 추리고

자잘한 것들 탈색해 매니큐어로 조심해 관절을 붙였다.

친구들 피해 달아나던 개구리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망명이 끝나면 이 근처 사방으로 흩어진 그 뼈와 매듭들,

수통에 등산용 바지라도 입고 꼭 찾으러 길 떠나야겠다.

하지만 시인은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몰랐다.

가슴 짓누르는 방랑의 길을 견뎌야 하는 것도 몰랐다.

나 살던 때 없었던 은평구의 연신내에 비가 내리고

밤비 되어 밑으로 스미기만 하는 조용한 비의 처세술,

그랬으면 덜 아팠을 것이다. 훨씬 천천히 늙었을 것이다.

전철은 3호선과 6호선이 지나는데 어느새 문이 다 닫히고

고양, 파주, 의정부 방면의 버스도 막차가 떠나고 말았다.

 

 

3. 피 토하는 밤

 

평생 얼굴 들기가 힘이 들었어.

피 토하며 시를 쓰지 못해 미안해.

고집도 줏대도 없이 글을 쓴다며

눈치 보며 비켜 다니며 살았지.

나도 그런 시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

책임지지 않고 노래만 하고 싶었어.

피 토하는 시인이 부러운 적은 많았지.

꽃은 곧 져버리니 얼굴이 될 수 없고

진단해보니 피의시는 모두 결핵이엇어.

우리는 결핵에 걸리기 힘든 시대에 살았고

그래도 피 토하듯 시를 써야 한다는 장광설이

나는 무서웠어. 나는 겁쟁이였나 봐.

 

연신내에 와서야 드디어 시인이 되었다.

인간은 다 시인이라는 말 누가 했었지?

쓰고 싶은 글, 허름한 목처만 좋아하는

구수한 맛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

평범한 것은 대게 친절하고 따뜻해.

무리수 없이 감칠맛 나는 정성일 뿐이야.

 

잘 있어.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

고마워, 이 말밖에는 또 할 말이 없네,

그러나 이 말은 언제고 다시 본다는 말,

젊은 날 못 박힌 허전함으로 당신을 찾을게.

비에 많이 젖어도 유혹에 번지지 않고

연신내 허름한 다리를 건너 밤처럼 갈게.

 

 

 

나는 왜 마종기라는 시인을 젊은 시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무 근거도 없이 그저 이름만으로 마종기라는 시인은 다소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쓰는 사람일 것이라 짐작했었다.

웃기는 일이다. 손톱 만큼도 선이 닿지 않는 짐작과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가 몹시 한심하다. 불쌍하기까지 하다. ㅉㅉㅉ

1939년 생이니까 우리나이로 일흔두살 되신 노장을 천지 모르고 날뛰는 청년 취급을 하다니..

 

외국에 오래 살고 있는 시인의 시는 몇 가지 컴플렉스가 뒤엉킨 모양이다.

나라를 떠나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조 또는 합리화....

모극어로 시를 쓰는 중견 아니 원로이지만 국내 정통 시단의 변방에 있다는 자조...

열정을 다하지 못한 시에 대한 미안함...

인생의 황혼기에 느끼는 누적된 회한과 달괸에 대한 염원 같은 것들...

 

'연신내에 와서야 드디어 시인이 되었다.'라는 시인의 말은 그래서 오히려 슬프다.

내게는 '연신내에 와서야 드디어 시로부터 해방되었다.'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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