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2010. 12. 27
동지 지나 꽁꽁 언 막달 기우는 밤
한 해를 돌아보니 참 공으로 살았다
이 끈 저 끈 끈이란 건 모조리 잘려
염치마저 닳아빠진 몽당 빗자루 신세였는데
형, 형 하는 오랜 후배 고마운 웃음에 기대고
몸 무거운 옛 직원 분투에 더부 살고
월세에 쫒기는 동생 손 시린 배려에 얹히고
하다못해 쫀쫀한 나라 살림에도 손 벌리고
턱없는 처남의 핏빛 등짐에 한 짐 더 얹고
앞 길 창창한 아이들에 송곳 같은 빚 지우고
대면대면하던 친구 가난한 살림에 숟가락 디밀고
급기야 목터져라 한 푼 두 푼 모은 아내 등까지 치고
그렇게 한 해를 빈 어깨로 살아왔다
기대 살 수 있는 것도 내 복이라 말하는가
하지만 그렇게 평생 기대어 산 왼 다리가 꺾이고
비칠대며 한 해 고개를 넘어가는 동지 섣달
내 무력한 무게로 인해 힘들었을 지게 작대기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릎 옹이가 안쓰럽다
이제 저 고개 넘어 가면
맡겨 둔 무거운 짐 다시 지고 걸을 수 있을까
밭쳐 둔 작대기 꾹 집고 일어서
좁은 등 가득히 풋풋한 사랑들을 대신 지고 걸을 수 있을까
창 밖에 쌀가루 같은 눈이 내린다
오랜 사랑 고운 눈도 이젠 미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