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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유 11 / 성실한 실업

취몽인 2011. 8. 29. 14:23

 

 

 

 

 

 

 

 

 

새로운 자유 11 / 성실한 실업

 

 

                                                    2011. 8. 29

 

나는 여전히 출근할 사무실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내가 출근을 하지 않아도 탓하거나 욕할 사람은 없다

다만 늘 앞날이 두려운 아내는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

월급은 제때에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사무실에는 나 외에 두 명이 자리에 앉아 뭔가를 한다

그들 외에도 서너 인간들은 제집처럼 무시로 드나든다

요즘 나는 원고 마감 시간에 쫒겨 마음이 제법 바쁘다

하지만 사실 마감은 없다 그저 쫒김을 즐기고 싶을 뿐

그렇지만 어깨가 무지근해질 때까지 자판을 두드린다

이 일로 한 두달 뒤에는 이삼백만원을 벌 수도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별 수 없으므로 그저 열심히 한다

세명이 사무실에서 번 돈은 임대료와 밥값으로 나간다

실업자가 될 수는 없어 회사를 만들어 출근하는 우리

한 명은 사장 한 명은 이사 한 명은 감사인 주식회사

거창한 창업의 배후에는 절박한 게으름이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성실해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외면하더라도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면

기회는 올 것이다 거듭 주문처럼 외며 자본을 잠식한다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바둑을 두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독촉하지 않는 마감을 향해 글을 두드리며 다짐을 한다

한 달은 쉬 간다 벌써 일년이 지났지만 용케 버텨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세상 한 가운데 쪼그리고 앉은 성실

나 혼자 벌어 나눠갖지 않아야 살 수 있는 비겁한 동업

그나마 이제 시간과 헤진 양심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이고  

게으르면 절대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고 다짐하는

주식회사 임원들이 성실하게 실업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법인카드로 밥을 먹고 고용보험료 꼬박 자동이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