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시갈은 그저 책에 지나지 않는 책들의 덧없음을, 그저 환영에 불과한 신들의 덧없음을,
그저 욕망일 뿐인 욕망의 덧없음을 환기한다. 의미의 예술 너머에 언어 예술이 있다.
언어 예술에서 상징들이 모두 추방된 까닭은 의미가 상징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뒤편에 존재하는 것은, 언어에 선행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 그저 자연 언어와 정반대되는 것,
즉 동시대의 왕국이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 뒤편의 왕국이다.
서양을 구원한 것은 수도원들이다. 인류는 무기보다는 독서에 힘입은 바 크다.
인도에서도, 티베트에서도, 일본에서도, 아이슬란드에서도 그렇다. 중국에서도 기록의 독해는 문명의 토대가 된다.
모든 사람이 독서를 중단하게 되면 문학의 가치가 다시 존중받게 될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문학의 은둔처는 재창조될 것이다.
사실상 인간의 다른 어떤 경험이 이에 필적하지 못하는 한 그렇다>
- 떠도는 그림자들
*
독서는 참으로 이상한 경험입니다. 사람들이 독서를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요.
독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책 속의 다른 정체성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무모한 경험이니까요.
우리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는 채로 그 세계에 뛰어듭니다.
우리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변하기 시작하는 거지요.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게 됩니다. 독서란 한 사람이 다른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 행위라고 정리해둘까요. 고대인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태아의 자세로 주검을 매장했던 것과 마찬가지지요.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독서에는 음악을 듣는 것보다 더 기묘한 최면 상태가 있는데, 이 상태에서 최초의 왕국에 접근할 수 있는 겁니다.
반면 글쓰기에는 의지가 개입되기 때문에 훨씬 덜 흥미롭지요.
-떠도는 그림자들- 파스칼 케냐르의 인터뷰.
*
때론 고독(孤獨)속의 다독(讀書)만이 시선(視線)을 보여주는 법.
----------------------------------------------------------------------
언젠가 풍경이 나를 지나가겠지
이유를 대는 것은 사랑을 황폐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대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지.
인간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느낌에만 기뻐하기 때문이오.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사람은 늙어갈수록, 자신이 통과하는 풍경에 광채에서 몸을 빼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
바람과 세월에 닳고, 피로와 기쁨에 탄력 잃은 살갗, 갖가지 체모, 눈물, 땀방울, 손톱과 머리카락,
이런 것들이 마치 낙엽이나 죽은 나뭇가지처럼 땅에 떨어져.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네.
내 살갗이 지나치게 얇아졌고, 구멍이 더 많이 생겼다고 느끼지.
난 혼자 중얼거리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케냐르
*
파스칼 케냐르는 미래 시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3차원의 시간 개념은 사회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안해낸 속임수.그 탁월한 사례가 바로 '역사'라는 초라한 구성물
진짜 시간이란 방향성 없이 양끝만 있는, " 옛날 " 과 " 옛날 이후" 라는 2차원의 시간.
'이야기舍廊 > 詩와 글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詩창작을 위한 일곱가지 방법-강은교 (0) | 2011.12.14 |
---|---|
2011년 12월의 레토릭 (0) | 2011.12.09 |
숨 쉬는 행간 (0) | 2011.11.15 |
詩와 간격에 대한 생각 (0) | 2011.10.11 |
[스크랩] 시와 연애하는 법 - 12.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0) | 2011.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