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GEO

사월

취몽인 2013. 4. 17. 23:49

 

 

 

 

사월

 

 

 

1.

언젠가부터 봄은

어쩔줄 모르는 계절이다

산 너머엔 아직도 눈이 내리고

꽃들은 제각기 눈치로 핀다

내일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연두색 기침을 쏟으며

아내는 꽃무늬 바지를 매만진다

 

2.

마른 목을 북으로 꺽고

고개만 치켜든 목련은 불편하다

그래서 목놓아 떨어지는게지

남으로 달리는 일번 국도변

모래 머금은 바람이 서성인다

한 무리 벛꽃이 요란할 때

한 켠은 침묵하는 다른 시간의 봄

 

3.

이맘 때 우리가 결혼했었지

빨간색 점퍼를 같이 입고

비 오는 신혼여행을 갔었지

그때도 유채꽃은 제멋대로 피었고

우리도 어설프게 피었었지

불안한 어깨 위로 쏟아지던 정방폭포

그런 낙하의 봄이었지

 

4.

며칠만 지나면

철쭉이 붉게 피 토하고

꽃 비 속에 늦은 벛꽃도 마저 피겠지

겹겹히 쌓인 사월을 들추고

다 큰 딸들이 노랗게 걸어나갈 때쯤이면 

먼저 간 친구가 기다리는

남쪽으로 가면 어떨까

 

5.

봄이야 아무렴 어떤가

꽃이야 언제 피면 어떤가

잦은 비 그리고 끈질긴 마른 기침

마침내 그치고 나면

많이 내려 놓은 아내는 꽃무늬 바지를 입고

나는 기쁜 빈손 흔들며

사월을 보내리 봄나들이 떠나리

 

 

2013. 4. 17/ 2013. 6월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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