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어깨동무 - 이 강희
내 어머니의 하나 뿐인 동생
외삼촌집 가는 길은 멀었다
어린 버스를 타고 북비산로터리에 내려
꼭대기 바라보고 골목 골목 한 십오분 오르내리면
왼쪽으로 휘어지는 내리막 왼편으로
길다란 마당의 외삼촌 집에 닿았다
마당 깊은 곳엔 그저 신비스런 큰 외삼촌이
오래된 비석처럼 검게 웃고 있었고
눈이 예쁜 외숙모는 늘 반갑게 우릴 맞았다
그 옆엔 언제나 키 큰 강희와 얼굴 둥근 원희가 있었다
마루로 마당으로 골목으로 쏘다니며
뭘 하며 그리 부지런히 놀았는지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집 뒤편 언덕에 네 형제가 나란히 앉아
대구역을 향해 달리는 철로와 기차를 오래 바라보았던 장면은
낡은 그러나 선명한 사진으로 남아있다
기억은 36년전에 끊겼다
대신동 외가에서 나누어던 당황스런 작별과 함께
철길 옆 언덕 위 내 외사촌 형제들은 떠났고
다시는 그 골목을 찾을 일이 없었다
바쁘게 나이 먹어 가는 중에
외삼촌은 두 번인가 다녀가시고
강희는 다녀갔지만 보지 못하고 둘째 원희도 다녀가고
그리고 아주 슬프게 멀리 떠난 소식에 가슴 아프고
강희 결혼식에 어머니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미국으로 다녀오시고
세월은 그렇게 또 가고 가고
간간히 먼 기억으로 더듬던 강희가 왔다
아내와 딸 둘 아들 하나의 아버지로 우리 앞에 왔다
쉰이 다 된 인상 좋은 중년의 아저씨로 내 앞에 왔다
기억과 추측 속 모습과 대면 사이에는
키는 조금 작고 날카롭기 보다는 후덕한 미소가
어린 시절 작게 웃었던 그 눈가에는
삽십육년 시간의 깊이를 담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저 까르르 웃었던 시절을 훌쩍지나
이제는 의례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촌수를 짚고 기억을 뒤적였지만
자꾸만 기억은 과거로 과거로 향하는 것은 나만의 회귀였을까
반가운 현재보다 그리운 그때를 나만 미련하게 만났던 것일까
낯선 수유리 마당 푸른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관계의 그물을 짠 시간속엔
어머니와 동생과 내 아내와 딸과 강희네 다섯 식구와 아제 부부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곳엔
내 마음 속 키다리 아저씨인 외삼촌과 천사같은 외숙모와
유난히 어른스러웠던 청년 원희도 함께
우리의 아름다운 유년을 이야기 하고 있었음을
그 무렵 딱 우리 또래인 강희의 아이들, 내 조카들
또 먼 시간이 흘러 우리 자리에 섰을 때
우리와 달리 함께 쌓은 추억의 탑들은 너무 낮겠지만
그래도 모퉁이 돌 하나쯤은 남겨지길 바라면 욕심일까
오늘 강희는 떠났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또 볼 수 있었음 좋겠다는 희망을 남기고
태평양을 날고 있을 그들의 뒷모습 속에
마음의 끈 하나 매달아 보낸다. 핏줄이라는 끈 하나.
2014.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