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의 구
삼십년쯤 전 서린동 낙지골목 옆
넥타이 매고 짐자전거 탄 의구가 왔다
그 떈 보험 영업사원이던
우리 회사 달력 한 뭉치 얻으러 왔었다
그때도 머리숱은 별로 없었다
그 뒨 지 앞인 지는 잘 모르겠다
순화동 중앙일보 뒷 골목 동기들이 모였다
"아인나? 그자나?"를 외치며 의구가 떠들었다
씨익 웃는 긴 입과 사나운 눈매
왜 의구가 앞장을 섰는 지는 지금도 모른다
동대문 야구장에서 자주 목청 높이던 때
그 즈음에 의구도 동대문에 있었다
나나인치니 레이스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
그래도 신나게 침 튀기며 자랑하던
내 기억에 의구가 가장 잘나갔던 시절이지 싶다
그 뒤부터는 소문이다
친한 친구한테 뒷통수를 맞았다.
다 털어 먹고 살림도 다 깨졌다 인생 막장됐다는 소문 소문
그래도 어쩌다 한 번 씩 볼 때는 여전했다.
눈이 좀 더 무서워졌다
세월은 터프하게 흘러
다시 나타난 의구는 터프한 트럭을 몰고 있었다
집채만한 차에서 먹고 자고
야구장에도 트럭을 몰고 나타났지만
트럭은 한 번도 못보고 의구 얼굴이 트럭 같았다
얼마 전 들은 소식
한 동안 살았던 이천으로 다시 올거라는 소식
어쩌면 지금쯤 덜컹 거리고 올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털 박힌 돼지껍데기 같은 머리통이며 수염이며
"아 인나? 그라이끼네.." 느리게 쏟으며
갑자기 의구 생각이 왜 났는 지는 나도 모르겠다
푸줏간 바랜 핏빛 같은 눈빛으로
선창가 비린내 같은 몸짓으로 꺼떡꺼떡 걷던
의구 생각을 하면
그리스인 조르바 생각이 나는 건 또 왜 그런지 모르겠다
2015. 0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