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 / 함민복
어께 위에서 도끼날이 번쩍 햇살을 찍는다
찍힌 하늘 속으로 돼지 비명이
길게 빨려 들어간다
그가 쓰러졌다
달려오던 트럭 백미러에 머리를 부딪쳐
앞으로 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게 하는
그가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중환자실에서
백미러는 자꾸 도끼날이 되었다
이차 수술 결과가 좋아야 식물인간이 된다고 했다
식물이란 말이 가장 무섭게 들리던
진단을 깨고
그가 일주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백사십살
이라고 대답했다 죽음 앞에서
세월보다 더 치열하게 삶을 살다 왔는지
나이를 백 살 더 먹어버린 그는
아주 오래된 일만 혼자 중얼거렸다
혹
죽였던 돼지를 만나
잡았던 개를 만나
밧줄을 풀고
함몰된 머리를 보듬고
멱 속으로 피를 다시 집어넣고
꿰매며
단지 생활난 탓이었다고
수십 석 볍씨를 논바닥에 토하고 온 것은 아닐까
백미러처럼
도축장으로 죽으러 가는 돼지 한 트럭
지금
횡단보도에 멈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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