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 커피를 마시며 / 최하림
이마 넓은 가을이 찾아오면
우리 마음은 둥글어진다 거년에
입다 둔 무명으로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있으려니
보이지 않게 먼지들이
국화문 벽지에 쌓인다
아내가 모카 커피를
타가지고 오는 소리 들린다
모카 향내는 색다르다 아내는
향내를 조금 쓰게 타올 때도 있고
조금 달게 타올 때도 있다
내 기분에 알맞게는 하지 못한다
아내는 내가 아니므로 그렇다
아내는 내가 아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산다 우리의 개성인 모서리들이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고 모서리들이
닳아지고 모서리들이 정다워지면서
죽음 가까이 죽음처럼 둥글게
감정이 고인다 감정이 가을잎 같다
나는 커피를 마신다 커피 맛은 쓰다
아내는 사과를 쟁반에 받쳐들고 올 때도 있다
홍옥이 가을에는 향기롭다
나는 부사가 좋을 때도 있고 배가 좋을
때도 있으련만 말을 않고
홍옥을 먹는다 홍옥 냄새가
입 안을 감돌고 붉은 빛은 혀를
감칠나게 한다 향내는 감정이 된다
시집 ;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 문학과지성사
출처 : 사랑의 서정시인 강해산
글쓴이 : 서정시인 강해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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