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전 발표 詩

리셋(Re-Set)

취몽인 2014. 11. 5. 13:27

 

 

 

리셋(Re-Set)

 

 

1.

달력을 넘기면 한 달은 또 다행히 지난다 절반 정도 두께의 부채는

그림자로 한 켜 쌓이고 이왕 하는 통사정은 크게 해야 한다는 깨달

음은 타다 남은 재 같은 것 달콤한 약속은 취한 채 이월 중 잊혀지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조바심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 손끝을 슬쩍 밀어

넣어보는 정도 저녁 여섯 시에 술자리를 찾아가며 굳이 성장을 했지

고객을 위해서 예쁜 여자 동창을 위해서 아니지 초라한 나를 위해서

 

2. 

여느 해보다 빠른 플라타너스의 추락 붉어지지도 않고 떨어져 마르는

녀석들을 밟을 수가 없다 너무 선명한 몰락 손바닥 편 단풍은 아직도

이 악물고 있는데 엔진 오일을 태우며 달리는 강변도로 하늘도 강도

시퍼렇게 멍들었다 빨리 가도 특별한 일 없는 길을 안달하며 가는 길

내일 무엇을 할까 생각하기 위해 일찍 퇴근하면 어떨까 오직 강아지

한 마리만 반길 곳 눈치를 깔고 드러눕기엔 바람이 너무 선명하다

 

3.

따져보건 따져보지 않건 목젖 가득 차오를 시간들 로그아웃 전원을

끄고 남은 해를 지우고 싶은 건 가소로운 희망 가슴 속에서 만 가닥

눈초리들 삐져 나온다 일 년 전도 십 년 전도 그랬었지 그래도 아직

비칠비칠 살아있지 희미한 퇴로를 용의주도하게 지우며 앓아 눕는

아내의 지혜 또는 교활함 산 것들은 살아야 한다 늘 켜진 에어백 등

옆으로 가끔 반짝이는 엔진오일 등 늙은이가 이틀은 버텨줄런지

 

4.

돌아 앉아 닫힌 창밖을 바라보는 플라스틱 강아지 한 마리 터진 등

사이로 넘실대는 한 줌의 저축 무더기 등을 가를 것인가 아내 생일

장미 향을 위해 무엇이든 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 일은 너무 아까워

유일한 생산 마저 절약하고 알뜰히 수확 다한 나무를 오를까 생각

의례적인 안부 한 꾸러미 들고 스스로 커피를 타 마시고 좋은 일이

임박했다 허세를 떨고 빈 마음 걸어 두고 내려올까

 

5.

시집 한 권 사고 싶은 정오 얇고 날씬한 창비나 문지 날카로운 제단

면으로 목을 긋고 싶다 베란다로 숨은 시들은 무사한가 생각마다에

맺힌 먼지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신을 만나러 가는 건

어때 그저 따져보리 마음 먹어도 결국은 빌며 매달렸던 그 자리에서

입 다물고 악 쓰다 어거지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나면 좀 낫지 않을까

운 좋아 소리 닿으면 거룩하게 리셋되어 이 가을 지날지 어찌 알겠어

 

 

2014. 11. 05 / 2015 모던포엠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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