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오래된 정원/장석남-

취몽인 2014. 12. 12. 11:13

 

 

 

-오래된 정원/장석남-


나는 오래 된 정원 하나를 가지고 있지
삶을 상처라고 가르치는 정원은
밤낮 없이 빛으로 낭자했어
더 이상은 아물지도 않았지
시간을 발밑에 묻고 있는 꽃나무와
이마 환하고 그림자 긴 바위돌의 인사를 보며
나는 그 곳으로 들어서곤 했지 무성한
빗방울 지나갈 땐 커다란 손바닥이
정원의 어느 곳에서부턴가 자라나와
정원 위에 펼치던 것 나는 내 가슴에
숨어서 보곤 했지, 왜 그랬을까
새들이 날아가면 공중엔 길이 났어
새보다 내겐 공중의 길이 더 선명했어
어디에 닿을 지
별은 받침대도 없이 뜨곤 했지
내가 저 별을 보기까지
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나는
떡갈나무의 번역으로도 읽고
강아지풀의 번역으로도 읽었지
물방울이 맺힌 걸 보면
물방울 속에서 많은 얼굴들이 보였어
빛들은 물방울들을 안고 흩어지곤 했지 그러면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 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
그곳이 어디인 지는 삶이 상처라고
길을 나서는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과
저 녹슨 풍향계만이 알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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