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스판의 골목

취몽인 2015. 1. 22. 11:36

 

 

 

스판의 골목

 

 

 

 

넓은 등짝은 모퉁이를 돌아 떠나고 없었다

조무래기들이 떼로 쏟아지던 경사도 지워지고

연탄집게 쳐들고 아버지 싸움을 거들던 삼거리도 초라하다

느닷없는 이름 파도고갯길 물길은 좁고 파도는 가물었다

 

3번, 5번 그리고 또 몇 번인가 척추는 자꾸 납작해졌다

그만큼의 높이로 어깨가 무너져 자꾸만 휘는 어머니

곡선의 무게를 지탱하던 무릎도 기울어 동그렇게 휘는 걸음

어머니의 기억이 이 골목을 휘게 하는 지 모른다

 

우리가 떠난 것처럼

많은 것들이 떠난 골목

집은 무너지고 세워지고

많은 마당들이 얼굴을 잃었다

근본 없는 나무들

끈끈하게 흐르던 수채며

개가 매달리던 전봇대

꼬질꼬질 한 꼬마들

이기적이던 할매 몇

모두 빠져나간 골목은 바싹 말랐다

 

낯설게 파도치며 돌아서는 길

 

빛나게 쏟아지는 노란 아이들

골목은 우르르 일어선다

반질한 얼굴의 담벼락

고개 내미는 대문들, 계단들

꼬르르 쏟아지는 개수대며 하수도며

컹컹 짓는 강아지들

어느 창틀 피흘리는 제라늄너머

활짝 웃는 젊은 할매의  빨간 입술

 

담배가게 모퉁이를 돌아 막걸리 주전자 들고 오는 어머니

키다리 아지매의 팔자 걸음이 골목을 쓸어낸다

이발소 아저씨의 농지거리를 걷어차고 정남이 엄마와 댓거리 하는

어머니의 골목은 어느새 쫄깃하게 파도친다 모두 돌아온 그 날처럼

 

그래 골목은 길다란 스판, 신축성을 감추고 있는 지 모른다 

 

 

2015.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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