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골목 1

취몽인 2015. 2. 1. 18:25

 

 

 

 

골목 1

 

 

 

큰 골목에서 떠밀려

이사 온 현숙이네 만화방 뒷 골목

앞집은 숙이네 뒷집은 창수네

그 사이에

대문 옆에 돼지 두 마리 키우던

구영감댁 구석방에 세들어 살았다

 

변소도 대문 옆에 숨어 있어

밤중에 똥눌 때는

무서워 떠는 나를 돼지가 빤히 보곤 했다

거무틔틔 번질번질한 돼지우리와

하얗게 세멘 발린 좁은 변소는

여기가 도시인가 시골인가 가끔 헷갈리게 했다

 

우리 방 툇마루 건너편엔 재하네가 살았다

직물공장 다니던 재하 아버지는 돈을 잘 벌었던가

한 달에 한 번쯤은 불고기를 먹었다.

둥근 철판에 구멍 숭숭 뚫린 불고기 판에

고기 굽는 냄새는 엄청났다

먹어보란 말은 절대 없었다 그건 그런게 아니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짜장라면을 끓였다

아니 고추가루 쏟아 바싹 볶았다

화한 고추 냄새와 짜장 냄새로 불고기 냄새를 쫓고

분기 탱천 잠들곤 했다

 

그래도 그 다음 해

아버지는 우리 집을 지어 구영감네를 떠났다

재하네는 몇 해를 더 그 골목에서

한 달에 한 번 불고기 냄새를 풍겼고

우리는 우리 집에서 매운 짜장라면을

아주 어쩌다 한 번씩 얻어 먹곤 했다.

 

 

2015. 02. 01

 

 

 

'詩舍廊 > 반고개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도극장  (0) 2015.02.18
골목 - 땅골  (0) 2015.02.10
스판의 골목  (0) 2015.01.22
국민과 기자  (0) 2014.09.01
오래된 아름다움  (0) 201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