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몸 / 詩 이향
불 피우다 보면
구겨진 종이가 더 잘 탄다
주름살 많은 부채 속, 바람 접혀 있듯
구겨진 몸에는 통로가 있다
밑바닥까지 굴러본 뒤에야 깊어지는 숨처럼
구석에 쿡, 처박혀봐야
뻑뻑한 등도 굽을 수 있지
그래야 바람을 안을 수 있지
반듯한 종이가 모서리를 들이미는 사이
한 뭉치 종이가 불을 먼저 안는다
구겨진다는 것은 바짝 다가선다는 것일까
더 망칠 것 없다는 듯
온몸으로 불길은 연다
구겨진 몸이 불을 살릴 줄 안다
* 이향 시집 ≪희다≫ (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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