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詩 김기택
죽은 지 여러 날 지난 그의 집으로
청구서가 온다 책이 온다 전화가 온다
지금은 죽었으므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삐 소리가 나면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반송되지 않는다
눈 없고 발 없는 우편물들이
바퀴로 발을 만들고 우편번호로 눈을 만들어 정확하게 달려온다
받을 사람 없다고 말할 입이 없어서
그냥 쌓인다 누군가가 뜯어봐 주기를 죽도록 기다리면서
무작정 쌓이기만 한다
말을 사정(射精)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혀들은
발육이 잘된 성욕을 참을 수 없어 꾸역꾸역 백지를 채우고
종이들은 제지공장에서 생산되자마자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 책이 된다 서류양식이 된다
백골징포(白骨徵布)를 징수하던 조직적인 끈기가 글자들을 실어나른다
아무리 많이 쌓여도 반송할 줄 모르는
바보 햇빛과 바보 바람이
한가롭게 우편물 위를 어정거리고 있다
* 김기택 시집 ≪껌≫ (창작과비평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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