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생존자 / 김이듬

취몽인 2016. 6. 2. 17:05



생존자   / 김이듬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그날 늦게

연안이 보이는 숲속에 해가 질 때

노을에 뺨을 맞대며

말했지 나는

 

지금 같다면

바로 지금 같다면

 

그리하여 그는

정장을 차려입고 시가 전차를 타고 와

매일 같이 그녀의 단골 카페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가진 보석을 팔았을지 모르지

 

전혀 변하지 않았구려

하얀 수염의 사내가 더 늙은 여자의 손등을 만지고 있다

카페 마르코에서 나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두고 그들을 본다

내가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고

늦은 저녁을 앞지르는 눈보라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뱉은 말에

가장 청순했던 아가씨는 환청에 실신했던 밤들을 겪었고

상냥했던 심장의 창이 무너져 절망을 위한 노래마저 접었던 날도 있었으리라

그리하여 지금

과거의 한 순간이 지금이어서

광기의 시계는 그날에 맞춰졌다  

 

, 나는 바로 지금조차 배겨 내질 못하는데

대부분의 지금은 방금으로 끝나는데

 

바로 내 곁에서 숨을 거두고 묻힌 사람들처럼

시간을 멈추어 가만히 영원으로 순간을 만드는 늙은 연인이여

 

바로 지금 차 한 잔 더 주문하는 나는 살아있는가

사랑을 떠나 종전을 만들었으니

불과 천일하고 하루 만에 부리나케 불타던 창문을 잊었으니

 

 

계간포엠포엠(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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