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에 이르다 / 김혜순
않아의 시간은 않아의 죽음이 꾸는 꿈이다.
詩는 그 꿈을 해체하는 형식의 발견이다.
詩적 주체가 할 일은 죽음의 내용을 넘어서는, 그 형식을 일으키는 움직임이다.
시간의 밖에 세워지는 순간의 건축, 건축을 긴장시키려는 詩적 화자의 리듬.
내용을 뚫고 솟아오르기보다 숨어서 흐느끼는 형식의 다차원 지도.
(그러므로 최고의 독자는 詩마다 다른, 그 흐느낌으로 만든 뼈의 지도를 해독한다.)
아마도 보이지 않거나 가느다랗지만 팽팽한 목소리로 만든 실타래의 이음매를
따라가다보면 詩의 아름다움이 언뜻 현현하리라.
매번 詩를 쓸 때마다 꿈과 인식을 발명하고 존재를 현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분리할 수 없이 섞인 채 강물처럼, 무늬를 가득 품은 피륙처럼
흘러가게 근육을 받쳐주는 것.
그것이 이 못난 현실, 매일 똑같은 현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현실을 대속해
주리라 믿으면서.
詩는 형식 속에서 아프고 슬픈 것들이, 존재 이전의 것들이, 더불어 사유가
솟아오르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다양한 결들 속에서 틀이 숨을 쉰다.
사유하는 주체가 詩적 틀을 타고 흐른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모든 문학적 내용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이고, 비밀이다.
그 미완성인 비밀을 형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틀이 받들어준다.
그럴 때 텍스트는 하나의 장소가 된다. 고독과 권태가 안개처럼 흐르고, 전쟁이
피흘리며 허공이 소리치며, 광기가 귀신처럼 흐르고, 죽음이 비상하며, 기쁨이
지저귀고, 비애가 혼자 먹는 밥상처럼 초라하고, 파도가 하늘을 달리고, 침묵이
상처 입은 가슴처럼 쓰라리고, 빛의 목소리가 들리고, 죽음이 베푼 아름다움과
두려움에 들려 스러지는 하나의 장소가 된다.
그러므로 형식은 수세미 살을 털고 났을 때 나타나는 그 질긴 줄기로 짜인
오케스트레이션.
나무 이파리에서 초록을 털고 났을 때의 그 가느다란 줄기의 형식과 나무줄기가
뻗어나가는 악곡의 형식, 새벽 이파리에 모여 이슬로 현현하지만 공기중에 퍼져
있을 땐 보이지 않는 습기 같은.
간 한 닢을 뒤덮은 핏줄 같은. 뇌의 신경망 같은. 손바닥의 손금 같은
절박함의, 절규의 내용이 아니라
그 절박함의 형식!
첫 호흡을 꺼내자마자 이미 느껴지는 것.
의미 없이도 존재하는 박동, 우리의 고향인 원대한 자유를 향해 떠가는 미확인
비행물체의 엔진
그러나 無에 닿는 설계! 無를 가운데 두고 수세미 열매 속 가늘고 질긴, 낚싯줄
같은 줄기들이 가느다란 방들을 칸칸이 짜나가듯이,
회오리처럼 원심력과 구심력의 한가운데 무를 두고 펼치는 詩적 자아의 현존.
소멸에 떠는 아름다움, 독자를 가격하는 그 무엇.
그러나 독자를 많이 얻기 위한 詩는 이와 다르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 詩적 자아의 부단한 정서적 흘러넘침이거나 촌철살인의
아포리즘. 너무 많이 존재하는 詩적 화자의 비애와 센티멘털. 거기서 번져나오는
위장된 성스러움,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참을 수 없는 나르시시즘으로 떨리는 살들
순진함이라는 그 허영심
- 김혜순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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