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중소(中沼) / 박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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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겨니는 계속 물빛이어서
계곡이 아무리 유리알처럼 투명하여도
자신은 감쪽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하루 종일 내려다보고 있는
늙은 상수리나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갈겨니
그 여리디여린 몸이 가을빛을 받아
바닥에 지 몸보다 더 큰 그림자를 끌고 다닌다는 것을
상수리나무는 행여 배고픈 날짐승이 눈치챌까봐
아침부터 우수수 이파리들을 떨어뜨려
어린 갈겨니를 덮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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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화엄사 중소(中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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