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점심
詩 정진영
오늘은 파도를 척척 뜯어다
맛있게 싸 먹고 싶다
배춧잎 속고갱이 파도
어느 바다 한 귀퉁이를
그대로 떠내 와
내 속에 출렁이게 하고 싶다
파도 한 겹에
더위 먹은 생각 하나씩 얹어
몸도 씻어내고 마음도 씻어내고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새어나와
누구라도 함께 잇속 드러내며
소라 같은 얼굴로 마주할 수 있다면
늦은 점심쯤이야 어떠리
오늘은 남해식당 평상에 앉아
파도 꽉꽉 눌러 담은 바다가 되어
아무런 생각 없는 무인도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
* 정진영 시집 ≪중환자실의 까뮈≫ (시인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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