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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말의 퇴적층 / 신용목

취몽인 2016. 9. 19. 16:04

 

 

 

 

말의 퇴적층 / 신용목

 

 

내가 뱉은 말이
바닥에 흥건했다 누구의 귀속으로도
빨려들지 못했다 무언가 지나가면
반죽처럼 갈라져 사방벽에 파문을 새겼다
누구도 내 말을 몸속에 담아가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문을 닫고 사라졌으며
아무도 다시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빈 방에서 혼잣말을 시작했다
뱉은 말은 바닥에서 차올랐고
이내 키를 넘었다 그때부터
나는 걷기를 포기했다 길고 부드러운 혀로
말의 반죽 속을 헤엄쳤다 와중에도
쉴새없이 말을 뱉었고 뱉을수록 한가득
된 반죽처럼 뻑뻑해졌다
더러 문틈으로 바람이 불고 해가 비쳐
반죽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는 점점
움직이기 힘들었고 마침내
꼼짝할 수 없었다 말들이 마저
다 마르자 나는
풍문같이 화석이 되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마지막 순간 그 우연한 자세가
영원한 나의 육체였다
몇만년 후 지질학자는
말의 퇴적층에서 혀의 종족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멸망한 시인을 증명할 것이다

 

 

 

 

 

 

출처 : 淸韻詩堂, 시를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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