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화엄사 중소(中沼) / 박진규

취몽인 2016. 9. 19. 14:55




화엄사 중소(中沼) / 박진규

.
.

...

갈겨니는 계속 물빛이어서

계곡이 아무리 유리알처럼 투명하여도

자신은 감쪽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하루 종일 내려다보고 있는

늙은 상수리나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갈겨니

그 여리디여린 몸이 가을빛을 받아

바닥에 지 몸보다 더 큰 그림자를 끌고 다닌다는 것을

상수리나무는 행여 배고픈 날짐승이 눈치챌까봐

아침부터 우수수 이파리들을 떨어뜨려

어린 갈겨니를 덮어주었던 것이다
.
.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화엄사 중소(中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