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천양희

취몽인 2017. 4. 23. 13:55

 

불안을 들켜 공연히 고함을 지르고 돌아선지 사흘.

아직도 침묵의 대치는 끝나지 않았다.

사흘 동안 내내 나는 속으로 나의 합리를 변호하느라

바빴다. 아내가 뭔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주일, 데모하느라 교회도 안가고, 무릎 수술한 아내를

내가 태워주지 않으면 그 또한 못간다는 사실을 무슨

유세처럼 깔아놓고, 여전히 한 마디도 않은채 집을 나섰다.

끽해야 갈 곳은 예의 도서관 뿐.

쉰하고도 중반을 넘어, 내일 모레면 결혼 30년 기념일인데

무엇을 인정받고, 무엇에 이기고자 이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아직도 철은 얼마만큼이나 비어 있는지, 꼴이 가소롭다.

 

마음을 다스리자, 시집을 읽다 더 부끄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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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몰랐을까 / 천양희

 

사과를 깍다 생각한다 사과!

사과 한알 깍았을 뿐인데

잘못한 일 생각나

그 사과 한번을

깍듯이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가

붉은 사과 한알보다 더 붉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사과 한알의 단맛에 물든 내가

그걸 깜빡 놓쳤다

젊어서는 풋사과처럼

붉은 것이 다 열정인 줄 알았다

붉어지는 내 미안

다시는 그런 일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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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라도 한 봉지 사가면

이 철딱서니 없는 입술이 열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