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들켜 공연히 고함을 지르고 돌아선지 사흘.
아직도 침묵의 대치는 끝나지 않았다.
사흘 동안 내내 나는 속으로 나의 합리를 변호하느라
바빴다. 아내가 뭔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주일, 데모하느라 교회도 안가고, 무릎 수술한 아내를
내가 태워주지 않으면 그 또한 못간다는 사실을 무슨
유세처럼 깔아놓고, 여전히 한 마디도 않은채 집을 나섰다.
끽해야 갈 곳은 예의 도서관 뿐.
쉰하고도 중반을 넘어, 내일 모레면 결혼 30년 기념일인데
무엇을 인정받고, 무엇에 이기고자 이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아직도 철은 얼마만큼이나 비어 있는지, 꼴이 가소롭다.
마음을 다스리자, 시집을 읽다 더 부끄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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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몰랐을까 / 천양희
사과를 깍다 생각한다 사과!
사과 한알 깍았을 뿐인데
잘못한 일 생각나
그 사과 한번을
깍듯이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가
붉은 사과 한알보다 더 붉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사과 한알의 단맛에 물든 내가
그걸 깜빡 놓쳤다
젊어서는 풋사과처럼
붉은 것이 다 열정인 줄 알았다
붉어지는 내 미안
다시는 그런 일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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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라도 한 봉지 사가면
이 철딱서니 없는 입술이 열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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