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직전 直前

취몽인 2019. 12. 31. 11:47




직전 直前

 

 

 

발 아래 쌓인 육만 킬로미터쯤의 거리

개수대로 빠져나간 잘린 수염 한 움큼

벌써 조금 늙은 딸 둘

한 번 넘어져 걸음을 놓치고만 나와 당신의 어머니

꼬박꼬박 쌓아온 생계의 눈치 한 됫박

어거지로 읽어 낸 책 칠십 권

마저 못읽은 다섯 권

어제서야 겨우 살짝 들어낸 미련 한 꾸러미

소주 석 잔

새로 생긴 발목의 통증

떠나간 어금니 둘 새로 박은 앞니 넷

여전히 친절하지 못한 남편

자연에 밀려 조금 더 멀어진 신

보지 못한 채 깊어졌을 친구들의 주름 몇 줄

죽음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간

조금 전까지

 

나는 모조리 사라졌다

다행 아닌가

 

191231

'詩舍廊 > ~2021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등단  (0) 2020.01.06
경자년 아침  (0) 2020.01.02
연필  (0) 2019.12.28
집으로 돌아오는 길  (0) 2019.12.25
두려움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0) 2019.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