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집으로 돌아오는 길

취몽인 2019. 12. 25. 11:28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출렁이는 목숨을 싣고 돌아오는 길

간격 없는 밤을 달린다

붉은 정지(停止)로 가득한 도로

멈출 때마다 목숨은 꿀럭인다

비틀대며 떨어지다 간신히 솟는 맥박

멈추지 않기 위해 조금씩만 앞으로 간다

브레이크를 버티는 발목이 저리다 제발

멈추지 않아야 한다

 

호흡을 올려 놨으니 버틸겁니다

가능한 한 서지 말아야 합니다

관성이 끊어지면 회복이 어려워요

목에서 목숨이 끓는다

거리는 줄지 않고 젖은 어둠은 자꾸 가라 앉는다

신호가 바뀌고 급정거를 하는 순간

계기판을 튀어오르는 빨간 불들 조금만 더

멈추지 않아야 한다

 

순환도로를 빠져나오는 숨소리가 나직하다

먼 시간이 내리막을 따라 앞질러 쏟아진다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그냥 두셨어요

대답하지 못한 입술이 바싹 말랐다

반고개를 넘는 신호에서 다시 가르릉대는 목숨

골목을 돌아 녹슨 철문 앞에서 망설인다

브레이크를 당기고 초조한 호흡을 바라본다 아직

멈추지 않아야 한다

 

비는 새벽에 그쳤다

주차장엔 가벼워진 아버지가 엎드려 있었다

불안은 녹슨 철판 밑에서 식어갔다

먼산 가랑이에서 젖은 해를 건지는 사이 

아버지는 가만히 내려 앉았다  

다 왔으니 멈추어도 된다 생각하셨던 걸까

오래 된 불이 꺼지며 내는 소리 들렸다 그래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2013. 9. 11

 

 

 

 

 

 

 

 

 

 

 

 


'詩舍廊 > ~2021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전 直前  (0) 2019.12.31
연필  (0) 2019.12.28
두려움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0) 2019.12.25
내가 사는 곳  (0) 2019.12.25
구멍  (0) 2019.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