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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취몽인 2019. 12. 25. 11:25

 

 

 

 

 

두려움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1.

1988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먼저 열렸는지 세계청년축전이 먼저 열렸는 지는 모른다. 

소주와 라면은 먼저 배편으로 떠났다. 한 달 뒤. 나리타에서 갈아 탄 아에로플로트는 

내려 앉는 태양을 좇아 검은 시베리아를 오랫 동안 날았다. 레닌그라드에 산다는 사내는 

손바닥만한 그림만 그렸다. 통로를 초과하는 슬라브 여자들의 샤넬 5. 목젖을 태우는

몇 잔의 꼬냑과 와인. 그래도 태양은 지지 않았다.

 

2.

공산당스러운 사내의 눈초리를 피해 입국을 하고 회색의 좁고 깊은 강이 흐르는 도시를 

경계하며 호텔로 왔을 때 TV에서는 임수경이 평양 어느 경기장을 파랗게 걷고 있었다.

세계의 청년들이 모여 적국에 무단 입국한 소녀 한 명을 맹렬히 환영하는 낯설음. 식은

땀을 닦으려 얼굴을 문지른 휴지가 살을 찔렀다. 창 밖에는 오래 묵은 나무 사이를 걷는

까마귀 몇 마리. 적성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한 오후는 예민했다. 

 

3.

사리원 출신. 모스크바대학 지질학 박사과정. 커다란 선글라스 뒤에 숨은 朴은 주위를

연신 살폈다. 보이지 않아도 두 개의 시선은 엄연할 것이다. 금지된 대화를 권유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호텔에서 컵라면과 올드파를 나누며 우린 도청당할 가치가 없다는 점을

긍정하고 웃었다. 하지만 민중서관 사전을 건내고 헤어질 무렵 받은 초대는 무거웠다.

내가 당기는 것은 견딜 수 있으나 당겨지는 것은 두려웠다.

 

4.

보름의 체류 기간 동안 朴은 몇 번 더 우리를 찾아왔다. 주변은 말보로와 프로스펙스

운동화, 불티나 라이터에 현혹된 타슈켄트 고려인들의 친절로 가득했다. 朴은 늦은 밤

호텔로 찾아와 백달러를 얻어간 뒤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동족의 시선들이 귀국 후의 문초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알마아타의 환대에 묻혀 날 선 백야는 가슴만 슬쩍 그으며 저물었다.

 

5.

임수경이 먼저 귀국했는 지는 모르겠다. 높이 세웠던 자본주의의 기둥들을 뽑고 아르

바트의 쏘냐와도 작별을 했다. 갈수록 밤이 깊어지는 시베리아를 거슬러 돌아 온 얼마

뒤 대한민국은 소련과 수교를 맺었다. 미수교 적성국에서 주적국의 인민을 촉한 혐의는

기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백야의 모스크바에서 朴과 주고받았던 경계는 그 후로도 오랫

동안 깊었다. 그 여름, 그와 나의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2013. 09. 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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