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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취몽인 2020. 1. 8. 13:41




멸종

 


 

유칼립투스 숲에 불이 났다 불길은 며칠째 번져 캥거루들은 껑충 새들은 풀쩍 숲에서 날아갔다

불길은 잦아들지 않았다 뛰거나 날지 못하는 것들은 유칼립투스 나무처럼 고스란히 탈 수 밖에

없었다 코알라도 그랬을 것이다 불타는 나무에서 내려올 수도 올라갈 수도 없어 엉거주춤 불탔

을 것이다 뉴스에 타다만 바비큐같은 더이상 귀엽지 않은 코알라가 나왔다 이미 떠난 

 

여름날 늦은 밤이었다 긴 식탁 아래로 쭈그려 앉은 그에게로 쉴새없이 주먹이 날아들었다 모두

서로 아는 사이인 사람들이 불빛을 등지고 주변을 빙 둘러서 있었다 때리는 사람도 말이 없었고

맞는 사람도 말이 없었고 보는 사람도 말이 없었다 눈두덩이가 터지고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렀

다 양반다리로 앉아 말없이 얻어 터지며 그는 생각했다 그래 이대로 끝나면 끝나는거지

 

털실로 만든 것 같은 표정이 검게 말렸다 돌리는 고개마다 불길에 그슬렸다 나무 타는 냄새에

인 스스로의 노린내를 맡으며 코알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게 뭐지 나는 왜 아프지 이대로

나는 건가 뜨거워 지금 뭘 해야하지 유칼립투스 잎은 왜 쓰지 뜨거워 어지러워 목말라 아 이

대체 뭐지 쟤는 왜저렇게 새카맣지 왜 나무에서 떨어지지 

 

결정적인 구둣발이 옆구리를 찍었다 모로 넘어지며 그는 생각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할 수는

없겠군 흉칙하니까 다시 일어나 앉아야 하는데 그래야 내가 이기는데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것

인데 의자 하나가 형광등 불빛 사이로 걸쳐졌다 쏟아졌다 가장 밝은 불빛이 터졌다 서로 아는

사이인 사람 몇이 그를 일으켜 다시 앉혔다 아무도 말이 없었고 그는 이겼다 사라지면서

 

 

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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