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4동 사거리
어쩌다 차를 타고
시내에서 삼양동쪽으로 가노라면
삼각산 지나고 국민대 지나
북한산 자락 어설픈
굽은 길을 지나야 한다
본 적은 없지만
왼쪽으로 정릉천이 흐른다는 보국문로를
어둑하게 거슬러 오르면
갑자기
환한 세상이 나온다
부처님 광배같은 언덕
놀라 둘러보지만 별 것 없다
그저 늙은 산 무릎을 타고 다닥다닥
시덥잖은 누옥들이 얹혔을 뿐인데
느닷없는 온동네가
환하다
어쩌면
내 안에서 불이 켜지는
그런 곳이 따로 있는지 모른다
이 곳이 그 구역*인지 모른다
내 발로 찾아온 공간이 아니라
어쩌면 과거 꿈의 공간이었을 지도 모르는
어디에도 가고싶지 않았던
늘 돌아가고 싶었던*
언젠가 기어이
여기에 살아야 할 팔자일 수도 있는
어쩌면
온 생에 불을 켜고
환하게
200111
* 어떤 장소들은 지구상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처럼만 보이는데, .그곳은 내 발로 들어간 어떤 장소가 아니라, 과거의 꿈의 공간이었다. 나는 '구역' 안에 있었던 것이다. '구역' 안에 있을 때는 다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다. 구역이 아닌 곳에 있을 때는 늘 어딘가 다른 곳, '구역'에 가기를 소망한다.' -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렙티스 마그나, / 제프 다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