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남편

취몽인 2020. 1. 18. 14:18


 "내 편은 들지 않고 남의 편만 드니까 남편이라고 하는 거야."


 아내들이 남편에게 불평을 쏟으며 하는 말이라고 한다. 어쩌다 누군가에게서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니 내 아내 말고도 남편에게 편가르기에 관한 한 불만이 있는 아내들이 많은 듯하다.  나 또한

아내와 같이 한 바깥 자리에서 무심코 한 말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왜 남의 편을 드느냐?"

라는 지청구를 들은 적이 적지 않다. 돌이켜보면 어떤 상황에서 내 아내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배려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아내가 섭섭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그랬을까?

남자들은 예의나 격식 따위를 따지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을 중시하기 때문에

곁에 있는, 완전한 내 편인 아내는 따로 배려할 필요를 덜 느껴 상대적으로 아내에게 소흘히

대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들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아내 입장에서 남편이라는

존재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어떤 경우이건 완벽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설사 아내 자신이 명백히 잘못한 일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남편은 그 잘못을 알고 있더라도 무조건

아내가 옳다 강변해주고 상대를 물리치는 역할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편들은

대체로 감정적인 판단보다는 이성적, 객관적 판단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탓에 무조건 아내편을

들기 보다는 잘잘못을 따져 판단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아내가 배신감을 느끼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들은 왜 그럴까?


 그저 남자와 여자의 선천적 감정선 차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아내와 남편이라는

부부라는 특수관계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보통은 남녀간에 사랑이란 감정으로 배타적인 결속관계가

생기면 해당 남녀는 알게 모르게 상대에 대한 소유권 같은 걸 마음 속에 갖게 되는 것 같다. 연예의

시기에는 대부분 남자측에서 소유권에 더 집착하는 양상을 보이고 그를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여자의 경우도 질투라는 권리행사가 있기는 하다.

 그 관계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공고해지면 양상은 바뀐다. 남편은 소유권 이전 등기가

완료된 부동산을 보듯 아내를 바라보는 경향이 생긴다. 잡은 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듯이.

반대로 아내의 입장에서는 본격적인 소유권 주장이 시작된다. 나를 집에 두고 바깥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내 수컷에 대해 지속적이고도 집요한 소유권 확인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향 자체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런데 이 소유권에 관한 주장은 소유물이 전적으로 소유권자인 아내의 의지를 따를 의무까지 주장하는

경우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남편이 타인들 앞에서 아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을 드는 일은

용남될 수 없는 일이되고 만다. 물론 이런 가설은 좀 딱딱하고 너무 남편 중심적인 기준이라는 약점이 크다.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보면 합리성은 좀 떨어지지만 한결 말랑말랑하게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여자들은, 아내들은 끊임없이 사랑 받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단순히 사랑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그 사랑을 확인 받기를 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세상 부부의 절반인 남편들이

하다하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불멸의 요구이다. 아내는 이미 잡아놓은 고기라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내가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내 편을 들어주는 한 사람, 그게 당신이어야 한다는 아내의 생각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강력하게 표현하라는 다른 목소리이다. 그 주장에 논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겪어보지

않았는가 남편들이여. "그게 아니라 전후 사정이 이러저러 하니 따져보면.." 어쩌구 하다가 한 며칠 찬 바람

쌩쌩 부는 아내의 뒷모습에 전전긍긍했던 지난 날들을.


 냠의 편, 남편이라는 말에는 한편 아내들이 느끼는 남편에 대한 소유권 주장의 한계인식이 존재하기도 한다.

아무리 붙들어 놔도 튀쳐나가는 남편, 남자를 보며 본능적으로, 유전적으로 강화해 온 내곁에 붙들어 두고자

하는 애틋한 방어기제가 담긴 표현이라 생각도 된다.


 애틋하지 않은가? 남편들이여.

남의 편들이여. 아내 편을 듭시다. 눈 딱 감고. 머리 굴리지 말고 언제나 내 편인 아내 편을 듭시다.

남의 편은 이제 아내 몰래 듭시다. 그럽시다.


2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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