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관계
살아가는 일은 여러 사람들과 이러저러한 관계 속에 사는 일이다. 이 숱한 관계들은 종종 불편함이란 이름으로 얽힌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상대는 가장 가까운 아내일 수도 있고, 사실 가장 자주 불편해지는 관계일터지만, 어쩌다 한번씩 마주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불편을 일으키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나나 상대의 이기심일 수도 있고, 오해가 개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적의, 공연한 질투 같은 것도 원인이 될 것이다.
어쨌든 불편한 관계는 불편하다. 아내와 다투고 며칠 서로 말을 하지않고 지내는 시간은 몹시 불편하다. 행동의 불편도 있지만 대부분 마음의 불편이 더 크다. 마음 속에 얽힌 거친 매듭을 보며 매듭 자체에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떻게 매듭을 풀까 고민하기도 한다. 그 모든 생각들은 결국 불편의 조각들이다.
최근 며칠 회사에서 내게 말을 건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굳이 말을 시켜도 돌아오는 반응은 지극히 퉁명스러운 단답이 전부다. 그나마 몇 번 시도하다가 나 또한 마음이 상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을 섞지 않고 있다. '까짓, 내가 뭐 아쉬워서' 하며 그냥 이렇게 불편하게 지낼 수 밖에 없겠군 생각하지만 역시 불편한 관계는 불편하다.
이유를 생각해보지만 떠오르는 게 없다. 뭔가 내가 그 사람 기준에서 잘못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언행을 했을 것이다.
아내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경우는 거의 그 이유를 안다. 대부분 어떤 섭섭함이나 실망같은 것이 그 원인이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서로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는 관계가 불편해지는 경우 그 이유를 짐작 못할 때가 많다. 둘 사이의 관계가 예의나 규칙 같은 경계 속에 있으니 이해 관계의 갈등 같은 확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면 속을 모르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견디기가 상대적으로 더 힘든 쪽이 먼저 매듭 꾸러미를 들고 상대에게 다가가 도대체 뭐가 문제냐? 내가 혹시 뭘 잘못한게 있느냐? 해결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많은 불편함이 풀리거나 완화된다. 하지만 불편이 자존심에 멱살을 잡히면 그 또한 쉽지 않다.
고백컨데 오래된 친구와 불편한 사이가 되어 삼 년째 서로 말은 커녕 지나치다 마주쳐도 외면하는 상황속에 놓여있기도 하다. 아마 그 친구와는 평생 그렇게 지낼지도 모른다 속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반면 한편으로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다시 잘지내자 화해를 청하는 편이 이렇게 불편하게 사는 것보다 '나를 위해' 이익이 아닌가 생각도 한다. 삼 년이란 매듭의 두께는 좀 더 많은 용기와 체념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지금 내 곁에 놓인 불편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길고 단단해 질 수도 있는 불편을 감수할 것인가? 잠깐의 비굴함을 감수하고 '나를 위해' 불편의 매듭을 끊을 것인가? 두 경우 모두 감수가 필요하다.
며칠 더 두고보면 매듭이 저절로 풀릴 수도 있다. 그것도 결국 며칠의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고 그 후에도 변한게 없으면 감수는 고스란히 그 몫 그대로 나를 바라보겠지.
불편함도 불편하고 감수도 불편하다.
둘의 무게를 달아보고 가벼운 쪽으로 기울어져야 하는데 달아보는 것 조차 불편하다.
불편한 건 정말 너무 불편하다.
20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