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원
쪽배를 타고 남쪽바다를 거슬러 올랐다 얕은 바다는 끈적이며 바닥을 잡아 당겼다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사원은 나타났다 성소피아 성당처럼 둥근 첨탑들을 거느린 비잔틴 양식의 사원은 그러나 온통 검었다 스테인드글라스도 형형 타일의 모자이크도 모조리 검은 칠갑으로 덮인채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한때 걸프의 원유를 뒤집어 쓴채 죽어가던 가마우지의 엉긴 깃털처럼 하늘도 검게 빛날뿐 다른 색이라곤 없는 세상 풍경의 절반을 차지한 거대한 검은 사원을 바라보는 사이 쪽배는 어느 기슭에 닿았다 푹푹 발이 빠지는 언덕을 검게 오르는 동안 검은 사원은 천천히 사라졌다 내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담벼락 아래 엄청나게 큰 개똥이 질펀한 어느 집에서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식탁을 정리하고 외투를 챙기다 그 세계에서 벗어났다 마지막이 여전히 검었던지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이미 벗어났으므로
20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