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개
경애가 나타났다.
내 평생에 가장 그리고 늘 미안한
내 모든 사랑은
문드러진 반고개에서 시작되었고
절반 이상은
옛 반고개의 높이가 남아있었던
내당교회에서 비롯되었다
앙상한 종루
언덕 앞으로 고개를 불쑥 내민 화단
교회 뒤편의 작은 마당
그리고 오르막 오른편의 교회학교
꼬마들에게 깊은 인사를 건네던 조장로가 늘 서있던
종루에 기대어 경애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에는
분노와 배신감이 철철 넘쳐나고 있었다
오래된 사랑
나는 그걸 알고 있었고
오래 모른 척 했다
계속 그랬어야 했지만
아는 척을 했고 그녀는 기뻐했다
그녀는 몰랐다
아는 척은 사랑이 아님을
그걸 알게 된 순간 그녀는 불타버렸다
서울로 올라온 뒤 몇 년 뒤
교회에서 본 그녀는 만삭이었다
류장로네 네명의 아들 중 허우대는 제일 멀쩡했지만
가장 무능했던 셋째와 결혼했다
막연히 그녀는 불행할 것이라 생각했고
내 탓이 제법 된다고 믿었다
그후 한번도 보지 못한 그녀가 꿈에 나타났다
교회 홈페이지를 뒤져 근황을 찾았다
감삼동 어느 뒷골목 초라한 가게 주인이다
전화는 받지 않는다
받았어도 끊을 생각이었다
반드시 사과를 해야한다
그녀의 맑은 인생에 튀긴 흙탕물을 조금이라도 닦아줘야한다
언젠가는
220114